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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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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발적 사과'는 없다 / 강성민

일본은 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못할까. 이런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독일의 사례가 불려 나온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과오를 반성하고, 교과서에 낱낱이 기록해 교육시킬 뿐만 아니라, 아우슈비츠를 역사 기억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반면,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들을 모셔놓고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참배하거나 공물을 바치고 있다. 이 극단의 대비가 주는 인지적 충격은 꽤 크다.

그런데 독일이 처음부터 순순히 과오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전후의 폐허에서 패전국 국민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물리적 생존과 정신적 회복이었다. 이윽고 전범 재판이 열렸을 때 독일은 범죄 내용을 최소화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최호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45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검사 측이 제출한 기소 항목에 있던 ‘제노사이드 범죄’ 부분이 심리에서 빠졌다. 몇 년 뒤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범 재판에서는 기소 항목에서 ‘반인도 범죄’가 독립적인 기준이 되지 못하고 전쟁범죄 항목에 예속됨으로써 “우리는 적어도 독일보다는 낫다”는 일본인들의 심리를 조성했다. 이 과정까지는 둘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독일은 왜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게 된 것일까. 196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아우슈비츠 재판 이후부터 기류가 달라졌다. 독일 국민은 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몬 이가 지극히 평범한 인성의 소유자라는 데 충격을 받았다. 이 ‘악의 평범성’ 앞에서 비로소 책임은 몇몇 사람의 몫이 아니라는 자각이 싹텄다.

하지만 그 전에 몇 가지 더욱 현실적인 여건이 존재했다. 독일에선 전범세력과 전후 집권세력 간의 단호한 단절이 가능했다. 사실 히틀러는 바이마르공화국 정치 엘리트 입장에서 보자면 ‘듣보잡’이고 지극히 예외적인 일탈 현상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당시 서독과 동독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히틀러와 그의 세력을 죄악시하고 바이마르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성행했다. 반면,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집단은 전통 사무라이 계급의 후손들이었다. 처음엔 일본 또한 광적인 군인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떠안겨보려 했지만, 이 쇼와 육군은 극소수만 처형되었을 뿐, 대부분 전후에도 살아남았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심지어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는 복역을 마치고 나와 총리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다.
다른 하나는 지정학적 이유다. 일본은 패전 이후 미국의 품에 안겨 아시아 대륙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직 미국의 품에서 미국몽을 꾸다가 한국에 전쟁이 나자 잠시 일어나 미국의 손을 잡고 외화벌이를 해서 돌아왔다. 한일협정 때 한국이 받았다는 그 3억달러에 해당하는 10년 할부 생산물과 용역보다 수십배는 더 달콤했을 그 돈을 기반으로 일본은 다시 일어섰다. 그 뒤로는 경제성공의 신화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반성할 이유가 없었고 요구받지도 않았다.

그런데 독일은 그렇지 않았다. 가라타니 고진은 ‘아(亞)주변’이라는 개념으로 일본이라는 나라가 고유성을 지켜올 수 있었던 원인을 설명했다. 조선은 중국과 붙어 있어 ‘주변’이 되어 중심국의 지배원리를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지만, 일본은 시쳇말로 사정거리 밖에 있어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구조가 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독일을 보자. 프랑스, 폴란드, 벨기에 등이 국경을 맞댄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하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는 조건이다. 프란치스카 세라핌 보스턴대 교수는 “무엇보다 독일은 전후 재건에서 프랑스, 벨기에와의 국경지역에서 생산되는 석탄에 많이 의존했기 때문에, 프랑스와 먼저 화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1949년 이후 미국이 신생국 이스라엘을 지지함으로써 독일이 1953년부터 대규모 배상 지급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맥락”이 되었다. 이에 비해 일본은 불가피하고도 자발적인 방식으로 아시아 대륙과 철저히 차단되어 있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과는 끝까지 요구해야 하고 견고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과거 청산의 정치는 향후에도 양국의 외교적 중심 의제에서 멀어지기 힘들다. 다만, 양심에 따른 반성과 사과에서 이제 일본은 너무 멀어졌다는 판단이다. 최근 방한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와다 하루키의 인터뷰에서 반성의 동력이 많이 약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유독 나뿐일까. 평론가 이명원이 말했듯,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야기한 문제는 ‘한·일 양국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문제’라는 점에서 보자면 그렇다. 이제 남은 것은 정치경제학적이고 문화적인 힘과 상황의 논리를 조성하는 것이다. 비록 가까운 시일에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ㅡ <경향신문> 2019년 8월 19일자 29면에서 전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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