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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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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돌의 시간 / 장덕진

격돌의 시간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장관을 임명했다. 놀란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지금의 상황에서 임명을 하든 안 하든 어차피 독이 든 두 개의 잔이다. 임명과 철회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별로 놀랄 일이 아니고, 어느 쪽을 선택하든 지켜보는 심경은 그저 착잡하다. 국회의 시간도 지나고, 대통령의 시간도 지나고, 격돌의 시간이 다가왔다. 대통령과 조국 장관은 야당과 검찰과 언론과 여론을 상대로 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4중 격돌이다. 격돌의 내용은 무엇일까. 지난 한 달간의 소위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것들은 이렇다.

첫째, 정의와 상식이 충돌했다. 나는 그동안 여러 차례 ‘386’의 유통기한은 끝났다고 지적해왔지만, 이제는 완벽하게 끝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역사에서 386의 기여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들의 한계도 뚜렷하다. 역사에 기여가 있다고 해서 권력과 정당성을 독점하는 것은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386에 대한 반감은 커져오고 있었는데, 그 얼마 남지 않은 정당성은 이번에 탈탈 털어서 모두 써버렸고, 부채까지 생겼다. 그 정도 의혹이 불거졌으면 일단 사퇴하고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상식과 일단 장관이 되어서 의혹을 해소해가며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는 386 특유의 정의가 충돌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앞으로 한국 정치에서 386의 정의에 가산점을 줄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던 제자 한 명이 툭 내뱉은 말을 잊지 못한다. “결국 좌우가 아니라 위아래가 문제였군요.”

둘째, 2019년의 대한민국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가 충돌했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가 허황한 장밋빛 미래로 기만하는 것이었다면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문제는 과거를 돌아보는 회고벽이다. 박근혜 정부의 시선은 1970년대에 고정되었다. 대통령의 부친이 대통령이었던 그 시절의 사고방식, 문화, 정책, 관행, 그리고 그 시절 이후 누가 배신자였는지 아니었는지에 이르기까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386이 20대였던 1980년대부터 시작해서 아직까지도 완수하지 못한 개혁을 바라보고 있다. 그 스스로도 남들과 똑같은 시대를 살아왔고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흠결을 몸에 묻혔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1980년대의 상징과도 같은 후보자와, 그 후보자를 질타하며 1970년대로 돌아가기를 기대하는 일부 청문위원들을 2019년의 한 화면에서 보는 것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독재에 충실히 복무하며 공안검사로 살아왔던 야당 대표가 후보자의 사노맹 경력을 공격하며 자신이 담당검사였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장면과, 똑같이 검사 출신이면서 탄핵무효를 외치는 야당 의원이 후보자가 제출한 부실한 자료를 찢어버리는 장면은 여야 어디에도 1980년대 이후의 세상은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소위 ‘조국 사태’ 한 달 동안 민주당 지지율은 3% 남짓 떨어졌고,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1% 남짓 올랐다. 조국 후보자를 임명하면 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예상이 과연 맞을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설사 일어나더라도 거기에 한국당이 설 자리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동안 한국당이 1970년대로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를 말해왔다면 흔들린 민심은 그들의 몫이 될 수도 있었을 터이다.

셋째, 꽃과 뿌리의 충돌이다. 화분을 오래 키워본 사람은 안다. 겉으로는 아직 꽃이 화려한데 뿌리는 텅 비어버린 화분이 있음을. 꽃은 조만간 떨어지고 화분은 말라죽는다. 유난히 정의로워 보였고 타인의 불의를 서슴지 않고 지적해왔던 조국 장관에게서 여러 건의 편법과 불공정의 혐의가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불법 여부와 상관없이 더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지배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 그의 혐의를 조금이라도 나눠 갖지 않은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돈이나 인맥을 동원해서 자녀의 스펙을 도와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정하지 않으니까 하지 않은 사람들은 한국의 상층 중에 얼마나 될까? 미국에서 낳거나 조기유학시킨 자녀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도록 방조하면서 만에 하나 보험 드는 심정을 잠깐이라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입으로는 국민을 위하고 국가를 위한다면서 뿌리는 이미 이 땅을 떠나버린 소위 지도층은 얼마나 많을까? 꽃이 뿌리를 기만하고 뿌리가 꽃을 배신했다.

격돌의 시간이 왔다. 민주화 이후 여러 정부의 경험을 보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민주화 세대의 특권을 잊어버리고 좌우가 아닌 위아래를 봐야 한다. 권력기관 개혁과 더불어 미래를 선점해야 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미래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무주공산이다. 힘세고 돈 많은 사람일수록 삼가고 나라의 뿌리에 투자를 해야 한다. 화분이 시들려고 하는 순간에 지금껏 싸우기만 하던 이 나라의 상층은 자기 몫만 챙겨 떠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한단 말인가.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ㅡ 경향신문 2019년 9월 10일자 31면에서 전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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