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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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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의 두 얼굴과 민주주의 장래 / 하용출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기 변호가 아직도 귀에 선명하다. 압축해서 말하자면 자신에게 직접 돌아온 것이 없기 때문에 결백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개인의 착복이 아니기 때문에 청렴하다는 것이었다. 민주화가 30여년 가까이 진행된 시점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아주 전통적인 생각을 듣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법 절차적 문제, 즉 영향력을 행사해도 문제가 된다는 의식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법이나 절차보다 결과가 더 중요했다. 그 시절 팽배했던 규범 아닌 규범은 독식하지 않거나 주위에 관련된 사람들과 청탁의 떡고물을 공유할 경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국현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한 가족이 경제공동체로 움직이면서 한 여러 가지 행위들에서 결과가 어떻게 보이든지 자신은 결백하다는 주장이다. 이 이면에는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법 절차적 해석이 깔려있다. 실제 벌어진 상황과 관계없이 법적 절차를 통해 자신은 결백하다는 것이다. 전자가 전형적인 한국전통적 사고로 자신을 합리화했다면 후자는 근대 법 논리로 가족 구성체 속의 독립된 개인의 입장을 방어하고 있다.

두 사례는 단순히 개인적 사례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 사례가 제기하는 문제는 과연 한국 사회에 전통적 가치와 규범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인 반면, 조국사태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개인단위로 움직일 수 있는 사회가 되었나의 문제를 제기한다.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얼마나 변했고, 또 변하지 않은 것인가? 지난 30여년간 한국 사회는 한국형 산업화가 남긴 독특한 사회구조 및 관행과 서구형 민주주의체제 간의 끊임없는 갈등을 보여왔다. 이 갈등 속에서 30년이 지났지만 한국적 민주주의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다. 이 갈등의 기저에는 집단적 오해가 숨어 있다. 그것은 경제발전이 곧바로 근대사회를 창출한다는 신화다. 이런 신화 위에 학습된 민주주의가 덮어 씌워질 때 모순과 갈등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소위 보수세력은 선거라는 방식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지역주의 등 전통적 질서를 유지하면서 자기 세력의 이익과 정권을 획득, 유지하려 했다. 20대 총선과 박근혜 탄핵으로 막을 고한 보수세력의 본질은 국가주의에 대한 향수에 불과했고 한국적 보수주의의 가치 창출에 실패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주장은 한국 보수주의의 공허함 그 자체였다. 또한 보수주의가 고수한 지역주의는 한국 사회 양분화의 시작이었다.

진보 역시 크게 다를 게 없다. 한국 진보가 내세운 민주화는 실상 정권교체였고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법적으로 이미 오래전 보장된 각종 민주적 제도는 별도의 투쟁이 필요 없었다. 한국적 보수와의 싸움은 방어적 지역주의를 불가피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진보는 제대로 된 학습을 하지 못하고 한국 실정에 맞는 진보의 내용 축적에 실패했다. 한국 진보의 근본적 모순점은 체화되지 않은 민주체제하에서 실제 생존 양식은 보수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상적 수준에서 한국 진보 역시 지역주의, 학연, 혈연의 연계 속에서 생존해왔기 때문이다. 조국사태는 이런 한국 진보의 모습을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결국 한국 민주화는 지난 30여년 한국적 사회구조의 영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진보든 보수든 국민을 선거대상으로 보면서 권력 획득 놀이를 해왔다. 이 결과 국민과 연계된 정당을 중심으로 한 대의제 실천, 사회갈등구조 해결을 위한 제도적 정비에 실패했다. 또한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기초인 하위체계 검찰, 경찰, 교육, 언론 분야의 자주성 확립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는 미국이 미국식으로, 일본이 일본식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듯 한국도 한국 몸에 맞는 민주적 제도와 가치 규범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조국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검찰개혁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보수와 진보에 공통된 자기 모순을 어떻게 극복하고 진정한 한국적 정체성을 가진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제기한다.

체화된 민주주의의 창출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한국 민주주의는 시작부터 한국 사회의 깊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 바탕을 두어왔다. 극렬한 정치적 양극화도 민주화과정에서 거치는 하나의 단계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정치권은 더 이상 국민을 선거의 도구로 삼지 말고 향후 30년 한국 민주화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새로운 점검을 시작해야 한다. 만약 한국 정치집단과 사회가 이런 문제의식을 상실한다면 어려운 내외 경제사정과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용출 / 미국 워싱턴대 석좌교수

ㅡ <경향신문> 2019년 10월 16일자에서 전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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