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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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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산업을 대변하는 미국 정부 / 원익선

철들 무렵 의문이 생겼다. 이 땅의 백성은 미국과 적대관계도 아닌데 왜 1945년 8월 미군은 남한에 점령군처럼 진주해서 정통성 있는 상해임시정부를 부정하고 자신들 마음대로 이 땅을 통치한 것일까. 김구 선생을 비롯한 독립지사들은 왜 개인자격으로 중국에서 돌아와야만 했을까. 의문을 풀기도 전에 관제교육을 통해 ‘빨갱이’를 양산하는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는 다른 비인간적 체제이므로 지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북한은 악의 축이다!라고 뇌에 각인되었다. 나이를 먹은 이제야 그 부조리의 전모를 파악하게 되었다.

당시 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연장선에 있었다. 미국의 개입으로 점점 선명해져 가는 좌우의 이념은 애국지사들에게는 단지 독립의 방식에 불과했다.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독립운동의 부차적 요소였던 이념은 미·소에 의해 남북분단의 주요인이 되고 말았다. 미국은 공산주의의 원조인 소련을 봉쇄할 목적으로 남쪽에 군대를 투입했다. 자신에게 대든 일본을 분할 통치하기보다는 병참기지로 만든 미국은 한반도를 자본주의 이념수호의 최전선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정전 후 북쪽에는 소련군과 중국군이 차례로 물러갔음에도 미국과 동맹이 된 남쪽에는 왜 미군이 여전히 주둔하고 있을까.

나는 그 해답을 자크 파월이 쓴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박영록 옮김)에서 확인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본의 세력이다.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최근 미국의 6조원 미군주둔비 인상 주장이다. 이에 대해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한·미 간 가치와 신뢰에 기반한 동맹은 점점 사라지고 돈과 거래만 남은 관계로 가는 분위기”라고 한 것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아니 원래부터 남북분단의 진정한 수혜자는 기업자본,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의 군수산업이다. 애초에 한반도는 미국이 역사·문화적으로 존중하는 지역이 아니었다. 오직 자본의 이익을 지키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니 갈등과 대립이 길수록 좋은 것이다.

전 세계 800여곳의 미군 주둔지를 보라. 주요 석유산지나 수송로에는 반드시 미군이 있다.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지역이나 분쟁 속에는 언제나 미국의 존재가 있다. 기축통화 달러를 맘대로 찍어내는 미연방준비은행은 정부기관이 아닌 사기업이다. 돈으로 돈을 버는 기업이 움직이는 나라가 미국이다. 자크 파월은 질문을 던진다. “미국은 어째서 파시스트 정권과 기타 독재정권에 놀라울 정도로 관대함을 보이는가”, “미국은 왜 끊임없이 전쟁에 관여하고, 그토록 자주 전쟁을 일으키는가”. 전자는 자신의 책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후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행보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세계대전 동안 IBM, ITT, 포드, 제너럴모터스 등 미국기업은 나치스의 보호 아래 독일에 자회사를 세워 전쟁물자를 생산했으며, 미국의 은행들은 자금을 지원했다. 전쟁터에서 스러져간 양 진영의 힘없는 병사들은 이들 기업의 이윤기계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강제수용소의 유대인이나 전쟁포로들로부터는 노동력을 착취했다. 피 묻은 전쟁범죄의 수익으로 미국의 대공황은 완전 회복되었으며, 축적된 자본은 세계 경제의 패권을 차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일본의 전범기업에 한 것처럼 이들 대부분은 면죄부를 받고, 지금도 굴지의 다국적기업으로 활개를 치고 있다. 미국의 석유회사들 또한 전쟁을 통해 특수를 누렸으며, 그 독점적 위치는 더욱 확고해졌다.

동서냉전 동안 누가 돈을 벌었는지 생각해 보라. 수많은 미사일과 핵무기를 누가 제조했겠는가.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전쟁물자 생산으로 이익을 얻는 집단이다. 그러니 차라리 트럼프는 ‘순수’하다. 부동산재벌인 그가 거리를 두고 있었던 미국의 기간산업, 즉 수많은 유권자를 먹여 살리는 군수산업의 손을 들어 재선을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그 산업의 두 기둥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다. 미국은 유럽과는 달리 짧은 역사에서 사회경제적 평등을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다. 평등 없는 자유주의는 자본의 자유를 말한다. 기업자본의 수익시스템이다. 나치 독일이 제공했던 값싼 노동력, 노조탄압, 노동이익의 무력화는 지금도 행해지는 자본주의의 옵션이다. 지옥 같은 전쟁을 부추기며 죽음을 매개로 얻는 이익은 이 모든 불편함마저 넘어선 알짜배기 산업이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의 옷을 입었지만, 속으로는 이처럼 자본의 욕망을 대변하는 것이 미국의 정치다. 그러니 백성의 울부짖음을 짓밟고 성주 소성리에 불법 배치된 사드를 만든 록히드 마틴은 그동안 이 땅에 납품한 전쟁물자로 얼마나 많은 돈을 챙겼겠는가.

[사유와 성찰] 원익선 / 원광대 정역원 교무


ㅡ <경향신문> 2019년 11월 23일자에서 전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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