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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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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항쟁은 91년 5월에 끝났다/ 홍기빈
87년항쟁은 91년 5월에 끝났다


1991년 4월 끝 무렵 명지대학교 학생 강경대씨가 시위 중 경찰폭력으로 사망하였다. 5월에도 여러 시민이 목숨을 끊으며 완전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열이 계속되었고, 수십만을 헤아리는 시위대가 서울 한복판을 행진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랬던 민주화운동의 열기는 6월이 되자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1987년 개정 헌법이 만든 6공화국 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021년의 대한민국은 그 6월에 배태되었다.

대중운동으로서의 87년항쟁은 직선제 개헌을 통한 권위주의 정권의 종식을 요구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항쟁을 준비했던 당시의 ‘민족민주운동’ 세력은 이보다 훨씬 더 크고 급진적인 사회변혁을 꿈꾸었다. 전두환 군부독재의 타도나 직선제 개헌을 넘어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지양하여 ‘자주민주통일’이 실현되는 사회를 이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것이 당시 ‘운동권’의 합의였다.

하지만 1987년 6월이 지나자 시민들은 운동 상층과 지도부의 ‘변절’과 ‘무능력’에 계속 좌절해야 했다. 그해 12월의 대통령선거는 김대중·김영삼 두 정치인의 분열로 결국 ‘죽 쑤어서 개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1990년에는 김영삼세력이 수구세력과 합친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태동했다. 그럼에도 전민련 등의 재야운동 지도부나 전대협 등의 학생운동 지도부는 이러한 상황을 뚫고 나갈 전략과 전술을 제시하지 못했다. NL(민족해방)이니, PD(민중민주)니 하는 정파적 논리로 싸우고 심지어 제도 정치권의 눈치까지 보면서 무능력을 한껏 과시하였다. 이를 최대한 활용한 당시 지배세력은 통치 주도권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였고, 1991년부터 당시 노재봉 총리의 ‘공안 통치’가 시작되었다. 이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대한 가혹한 국가폭력이 쏟아졌고, 강경대씨가 목숨을 잃은 등록금투쟁 같은 학내 시위가 벌어지게 됐다.

87년항쟁 이후 무엇보다 광주 학살 책임자를 처벌하고 수구·반동 세력을 척결한 뒤 급진적인 민주화가 이루어지길 갈망하던 ‘운동권’ 학생들과 활동가들은 그 좌절감이 극에 달하였다. 강경대씨의 죽음은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다. 자신의 목숨이라도 던져서 이 답보 상태를 뚫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이 한두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의 좌절감은 많은 이들에게 전파되었고, 그것이 엄청난 규모의 시위대로 나타나 1991년 5월 한달 서울 시내를 꽉 메우게 되었다.

하지만 운동 지도부나 정치권의 무능력과 무관심은 여전했다. 사회운동 지도부는 ‘정권 타도’라는 무책임한 구호만 남발할 뿐, 대중 투쟁의 동력을 당시 현실에 유효하게 정치·사회 개혁의 동력으로 이끌어내는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온통 뒤집혔으나 그 난리통 세상이 답보 상태를 보이자 사회 전체의 피로감과 반감이 누적되고, 시위대 또한 체력적으로 고갈된다. 5월 말이 되자 본격적으로 반동이 시작된다. 정원식 총리가 외국어대에서 밀가루를 뒤집어쓴 사건이 터졌고, 강기훈씨 유서 대필 조작이 시작되었으며, 김지하·박홍 등이 마이크를 쥐게 된다. 6월로 다가온 광역단체장 지방선거에 정신이 팔린 야당들은 상황 수습을 원했고, 운동 지도부는 또 무능력했다. 6월20일 치러진 지방선거는 민자당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자 세상은 무섭게 평안하고 틀잡힌 사회로 돌아간다. 그 꽃다운 청년들의 죽음이 과연 벌어지기나 했을까 싶도록…. 그리고 다음해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영삼 민자당 후보가 당선된다.

30년 전 일을 차분히 복기하는 이유는 제발 거짓말들 그만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당시의 운동권 지도부 인물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도 정치인들로 ‘변절’하여 지금까지 ‘민주화세력’을 자칭하고 있다. 그리고 2021년 오늘도 마치 1987년에 못다 이룬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진행되고 있는 듯 외치고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87년의 민주화운동은 91년 5월에 그렇게 끝이 났다. 87년의 이상은 91년 5월 그 아프고 꽃다운 죽음들과 함께 꽃상여를 타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쪽저쪽 할 것 없이, 너나 할 것 없이 이권과 세력에 눈먼 자들이 30년간 되새김질해 놓은 비루한 6공화국일 뿐이다. 5년으로 단명한 ‘실패한 혁명’, 그 87년의 비명을 다시 5월에 새긴다.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고 그 돌파구를 모색하는 데 87년을 또 들고나오는 이들을 그 비명 앞으로 끌고 가고자 한다. 지금의 6공화국은 87년이 아닌 91년 5월에 시작되었다.

홍기빈 / 정치경제학자

ㅡ 경향신문 2021년 5월 1일 33면 <세상읽기>에서 전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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