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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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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들 / 이지호
               돼지들 / 이지호



어느 날 돼지들이 사라졌다.

노란 우의를 입은 사나이가 피리를 불었다고 했다. 꽥꽥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돼지들이 따라나섰다 했다. 돼지를 몰고 가는 바람의 목관에 몇 개의 구멍이 있었다. 고 했다. 그 구멍 속으로 돼지들이 산 채로 묻혔다고 했다.

마을에 낯선 투명한 음계들이 떠다닌다.
마을의 지하 군데군데가 팽창하고
증오는 모두 네 개의 발자국을 가졌다는 소문이 돌고
막걸리잔에 붉은 핏발들이 가라앉았다.

골목엔 안개가 돌아다니곤 했다고 했다. 그 위로 은화 같은 봄꽃이 떨어지고 몇몇은 돼지 발굽 모양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돼지들이 사라진 마을에 꽥꽥대는 고요가 돌아다닌다고 했다. 텅 빈 돈사마다 기르던 예의를 가두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고 했다.

병든 발굽을 하고 봄이 지나가고
음계의 어느 쉼표에도 돼지들이 살지 않는다.
포클레인 몇 대가 지방도를 따라 지나갈 뿐
사라진 돼지들이
우적우적 마을을 먹어 치우고 있다.

그리고 어제
최씨 성을 가진 한 사내가 빈 돈사에 목장을 맸고 오늘 마을 입구로 포클레인 한 대가 천천히 들어오고 있다.

이지호 시집 <말끝에 매달린 심장> (2017,시인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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