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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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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수저/김광균
은수저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추보식 구성의 이 시는 화자인 아버지가 저녁을 먹으며 아이의 부재를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한밤중에 만난 죽은 아이의 환영과 죽음의 세계로 떠나는 아이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이 시는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비통한 심경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시어는 '눈물' 하나밖에는 없다. 그러나 간결한 3연의 구성과 단문으로 행을 마감한 시 형식 속에는 자식을 그리워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아픔이 흠뻑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1연은 화자가 저녁 식사 시간에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는 모습이다. 저녁 식사 시간, 화자는 문득 아이가 없음을 깨닫는다.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잠깐 어디를 간 것이라고 믿어 왔지만, 저녁 밥상을 받고 아이의 빈 자리를 보며 그제서야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는 아이의 방석에 놓인 주인 없는 '은수저'를 보며 화자는 눈물을 흘린다. '저무는 산'과 '잠기는 노을'은 하강․소멸의 이미지로서 아이의 죽음을 상징하며, 아기를 '애기'로 표현한 것에서 더 짙은 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은수저는 '수복강녕(壽福康寧)'을 빌며 그가 아이의 돌잔치 때 선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화자는 그 은수저에서 더 깊은 절망감을 느끼는 것이다. '은수저'에서 '애기'를 떠올리고, 다시 그것은 '부정(父情)'으로 확대됨에 따라 마침내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2연은 한밤중에 화자가 아이의 환영(幻影)을 만나는 모습이다.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화자는 들창을 열고 바람 부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던 중,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어디선가 방실방실 웃으며 방안을 들여다보는 아이의 환영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화자가 반가워하기도 전에, 아이는 벌써 문을 닫고 총총히 사라져 버린다.

  3연은 아이가 죽음의 세계로 떠나가는 모습이다. 화자는 '먼 들길'로 제시된 죽음의 세계로 '맨발 벗은' 채 울면서 가고 있는 '애기'를 목메어 부르지만, 아이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그림자마저 아른거릴’ 뿐이다.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던 2연의 '애기'가 3연에 와서는 사자(死者)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나 있다. 아무리 목메어 부르며 그리워하더라도 이젠 더 이상 이 곳 이승의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아이임을 인정하고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데서 진한 육친애를 느낄 수 있다.

   정지용의 <유리창>과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지만, <유리창>보다 화자의 감정이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별다른 수사적 기교 없이 평이한 서술로 아픔을 토로하고 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이지만, 그것을 절제하고 여과하는 시인의 인간적 성숙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는 간결한 터치의 시이다. 문맥도 1행씩 또박또박 끝나고 있다. ‘눈물’이라는 낱말이 한번 나왔을 뿐, 비통한 심경의 직접적인 말은 하나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폭발할 듯한 살얼음의 슬픔을 주제로 하였기 때문에 이 간결한 터치가 더 많은 효과와 감동을 준다. 예술이란 본래가 표현의 도(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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