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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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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아님의 <미혼 아들이 고양이를 낳다>를 읽고
아들네 고양이, 찐
찐이는 이쁘다
볼 때마다 점점 더 이뻐진다.
볼우물이 쏙 패인 계집년 같이
어수룩한 데 하나 없는, 고 조동아리
대리석 신전 기둥마냥 희고 매끈한 두 앞다리
지중해를 둘러온 듯이 삼색조 반달꼬리

아들이 몇 년 전부터 고양이를 배겠다고 해서
나는 털 날린다, 떼라, 떼라, 말아라, 말아라
생떼를 썼었지
그 아들 졸업하고 돈 벌더니 셋방 얻고
혼자 집 나가 찐이 낳고 보란 듯이 둘이 잘 산다

배 아프다 나는
께임 좀 그만, 자격쯩 좀 더 따라, 보채는 어미보다
모니터에 빠진 아들의 책상 모퉁이에 날렵히 올라
하도 접어서 모서리 닳아진 색종이 같은
하루를 콧수염 끝에 달고 밤마다 음음, 희롱하는
저 당당한 고독 처리사

두 아들이 빠져나가 축 늘어진 내 어깨의 걸낭도
아주 던져버릴까, 나도 고양이가 될까
신의 께임 모니터에 올라앉아
앙큼하게 여생이나 예찬할까, 한 생각 꽂힌다
찐이, 그 년 볼 때마다

                                  - 미혼 아들이 고양이를 낳다


‘花蛇’가 원초적 생명력에 대한 에로티즘적 접근이라고 한다면 이 詩는 인간 본연의 원초적 질투, 강샘, 시샘, 시기에 대한 내향적 고백이다. 그 시기와 질투의 대상은 내가 낳은 나의 영원한 분신이며 사랑의 전부일 수 밖에 없는 아들이다. 그런 아들이 고양이에게 홀렸다. 그렇게 오만가지 이유를 들어 말려봤지만 결국 아들을 뺏기고야 말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 요망한 것은 불손하게도 예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예쁘고, 간지러울 정도로 애교쟁이이며, 아들의 혼을 쏙빼놓을 정도로 요염하다. 고양이는 요망한 내 아들의 첫사랑일 수도 있고, 어떻게 해도 성에 차지 않는 여자친구일 수도 있다.
이 시의 힘은 그런 시기와 질투를 증오나 분노가 아닌 내향적인 동경으로 시기의 대상물을 올곳게 바라보고 있는데서 나온다. 이런 힘은 시의 기저를 해학적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고, 그래서 시의 톤을 밝고 건강하게 유지하게 만든다.

좀 아쉬운 부분은 처음부터 너무 속내를 드러내버려 결국 질투가 동경으로 변화되는 그 순간을 좀 더 큰 반전으로 만들어 해학적인 긴장을 가질 수 있는 부분들을 쉽게 풀어버렸다는 점이다. 객관적인 묘사와 상황설정, 그리고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이입의 순으로 속내를 늦게 보여주었다면 그런 긴장이 해학으로 치환되는 지점이 좀 더 극대화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고양이를 자식으로 치환하는 것보다 연애의 대상으로 두는 것이 시의 기저감정을 극대화하는데 용이하지 않을까 싶다.
또하나는 객체에 대한 자기동일시, 동경으로의 변환이 너무 맥없이 풀어지는 느낌이다. 저 요망한 고양이,년, 나쁜년, 하지만 부러운 젊음과 요염과 매력을 그냥 고양이가 될까라고 고백하는 것보다, 그선망의 근원에 대한 접근은 어떨까 싶다. 그것이 아들이 낳은 대상보다는, 짝을 지은 대상인 것이 더 극적이기도 할 것이고. 그래서 나에게 주문을 걸듯, ‘고양이 같은 고운 입술, 스며라 고양이!’라고 외치는 것처럼.

이 시는 즐거운 시이다, 근아님에게, 지나가다가 나지막히 속삭이고 싶을 만큼. ‘스며라 고양이!’

-초하coolpoem



시인통신
봄은 고양이로다가 아니라 ,내 아들에게 내재적으로 깃드는 고양이인가?  2017/09/12    

초록
초하님 시평을 보니 지난 번 만났을 때 보았던 초하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근데 수더분한 모습 뒤에 어쩜 이렇게 논리적이고 예리한 목소리가 숨이있을까 싶어 언뜻 상상이 안가네요.
잘 지내시지요?
 2017/11/07    

초하
이제 초록님과의 마지막 기억은 거제의 푸른밤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시 새로운 날을 만들 수 있을 때를 고대해봅니다 :)  2017/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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