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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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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다리님의 <구멍 난 양말>을 읽고
구멍 난 양말  

일본 제국주의의 심이 박힌 목조건물
교장 선생님의 일장훈시가 끝난 후
다른 나라 행진곡에 따라
사열 종대로 오와 열을 맞춰
교실로 향하던 시절
구멍 난 양말이 부끄러워
같은 색 종이로 막은 적 있다

사이로 나온 하얀 발가락이
더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은 쉽게 가려지는 게 아니었다

구멍을 메꾸지 못한 나라에서
구멍 난 인생 살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지금도

다름을 허용하지 않던 시절에 대한 시인의 경험이 녹아 있는 시이다. 모두 같은 색의 교복을 입고 눈에 띄는 흰 양말도 신지 못하게 하던 그때, 구멍 난 양말 사이로 나온 <하얀 발가락>을 부끄러워하는 화자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시인에게 가난은 부끄럽고 아린 기억이다. 거기에 더해 <일본 제국주의의 심이 박힌 목조건물>이라니. 화자의 시선은 억압당했던 과거의 배경으로 옮아간다. 가난에서 시작하여 부끄러움으로 끝났다면 그저 개인사로 치부될 시가 시대적인 상황을 얘기함으로써 시의 반경을 넓히는 효과를 낸다. 마지막 연에 이르러 시인은 그날의 부끄러움이 현재까지 진행형이라고 말한다. 사실, 일제 강점기가 민족분단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고 보면 이 시가 바라보고 있는 지점은 지극히 타당하다. 어린 시절, 양말에 난 구멍에서 시작된 부끄러움은 <오와 열을 맞추어 교실로 향하던> 날들을 배경으로 삼아, 더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뒤이어 <구멍을 메꾸지 못한 나라>에서 <구멍 난 인생을 살지 않으려 애쓰는> 현재인의 모습으로 오버랩 된다. <같은 색 종이로>라도 막으려는 부끄러움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안고 가야 할 통과의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수요 집회를 비롯하여, 아직까지 청산되지 못한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는 현재를 사는 독자로서 이 시에 공감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다만, 1연의 배경 설명에 비해 3연의 현재는 시인의 내밀한 생각이 생략된 듯해서 등가적이지 않다. 그래서인지 다소 균형추가 기운 느낌이 있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늘 구멍을 메우려고 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뭇 시인이 읊은 것처럼 인생은 거창한 의미를 동반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빈 곳을 채우려는 몸부림일지도. 겸손해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그래서다.


장다리
역시! 해몽이 훨씬 좋습니다. 집 짓는 과정을 다 본 듯.
처음엔 앞쪽이 간단했었는데, 세밀하게 묘사해도 괜찮겠다싶어 추가한 거였어요.
'구멍을 메꾸지 못한 나라'도 퍼득 떠올라 투입했는데 균형이 맞춰지더라구요.
원고 쓰느라 바쁜 와중에도 휼륭한 평, 고맙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건강, 하세요.
 2018/09/21    

parapin
좋게 받아주시니 시평을 쓴 보람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평한다는게 사실은 부담도 되거든요. 건강히 좋은 추석 보내세요.  2018/09/21    

이남
시와 시평, 다 좋습니다.^^  2018/12/02    

장다리
오랜만의 댓글이, 더 좋습니다.  2018/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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