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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초하 
Subject  
   초록님의 <기울어진 방>을 읽고
기울어진 방


옷을 입다가
몸이 비틀거린다
세월 흔적으로 구들장 무너졌는가  
그 작은 기울기
나의 중심을 흐트린다

언제나 지구의 중심을 향하여 움직이는 중력의 힘에 의하면 언제나 추락할 수 밖에 없는 세상 모든 것들의 숙명 그리하여 날마다 구들장이 무너지고 세상이 기울어 진다 딱 일촌씩의 차이를 두며 기울어진 바닥으로 무언가가 떨어진다 누군가는 항상 기울어진 방을 만들고 어머니는 언제나 비틀거리며 기울어진 방바닥을 치운다 신문은 중력을 그린다 기울이지 않아도 읽을 수 있도록 방바닥을 그린다 언제나 기울어진 방에서만 행복한 사람들이 태어난다.

누군가 수평을 맞추지 못하였거나
중력을 바르게 읽어내는 수평계가 흐트러졌거나
보이지 않는 누군가 그 눈금자를 몰래 건드려 놓았거나
이 작은 방안에서 날마다 옷을 입고
밥을 먹고
누군가를 앞장세워 소리를 지르고
가면을 쓰고 기울어진 서로를 욕한다

문 밖을 나선다  
세상이 기울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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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공정하고 평등한지에 대한 대답은 늘 부정적이다. 조금만 삶을 살아보면 누구나 금세 알 수 있을 만큼 세상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해야 할 만큼 우리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자본과 권력과 그것을 장악한 사람들의 기득권을 위해 세상은 항상 ‘기울어져’ 있다. 화자는 그 ‘기울기’를 느낀다. 기울어진 세상에서 태어나 기울어지게 살아왔지만 그런 불균형적인 중력의 힘은 불가한 이해를 요구할 뿐이다.

쉽게 생각해보면 모든 철학은 인간 본질에 대한 이해와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그리고 그런 인간들이 모여 이루어진 사회 구조와 관계에 대한 정의를 이야기한다. 내가 누구이고 태어나고 죽는 이 삶의 의미는 내게 어떤 의미이며, 그런 개인들이 모여 있는 사회는 어때야 하며 어떤 구조와 가치와 정의로 우리를 자리매김하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자 한다. 나를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그런 모든 과정의 기본은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덕목, 예절, 질서에 대한 존중, 배려, 상호보완을 꿈꾼다. 철학적인 삶을 사는 사회는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과는 다르다. 우리는 매일 불합리과 부조리와 대항해야 하며 혹은 묵인하고 용납하고 좌절해야 한다. 우리는 철학적으로 살고 있지 않아서일까. 아니, 그렇게 살 수 없게 시달리고 길들여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다.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고 어떻게 이 굴레에서 벗어나야하는 지를 생각할 겨를 보다는 그 굴레에서 상관된 상대적 보편을, 보다 쉽고 안전하고 편안한 의미로서 그 굴레를 울타리고 바꾸는데 매진한다. 그것이 현재 자본주의 구조가 요구하는 사회질서이며 제도화된 삶의 보편으로 제시된 정의이다. 수천년 동안 기나긴 투쟁과 보완으로 선택되어진 결과이기에 별 의의를 제기하지 말아야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제도와 질서의 가치기준에 대한 정의가 올바른 것인가에 관한 질문, 그리고 그 결정이 어떤 과정에서 누구에 의해 어떤 제도를 통해 민의화되고 결정되었는가에 대한 질문 또한 다시 확인해야할 부분이다. 또한 그런 질서와 제도의 편차, 문화적 상대성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차이에 대해서는 더욱 더 커다란 질문이 필요하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선진국의 국회의원들은 먼나라의 이야기이라는 것을 그리고 바뀔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걸을 알고 있는 한 그런 상대적 편차에 대한 질문 또한 다른 의미에서의 ‘기울기’이다.
초록님이 읽어낸 세상은 왜곡되고 비뚤어진, 하지만 쉬이 바뀌지 않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이고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서로를 비난하고 되물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너무 거대한 벽이다. 하지만 희망을 꿈꾸고 정의를 지지하는, 울타리에 갖혀있지 않는 그런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고자 노력해왔다. 세월호를 통해 드러난 역겹고 더러운 세상의 민낯이 우리의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워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세상이 조금씩 변해간다.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믿는 혁명이 역사에 있었고 그렇게 세상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바뀌거나 잘못된 방향을 되돌려왔다. 그것이 얼마나 긴 투쟁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극적으로 이상향의 세상이 올 수 있는 것인지 또 그것은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누군가는 기도하고 누군가는 촛불을, 혹은 횃불을 드는 지금은 알 수가 없다. 방향과 방법과 대안이 없는 희망은 다른 의미의 부질없는 욕망이다.

초록님도 그렇게 문을 열고 그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게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현실을 담담히 응시하는 것. 그래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고 가야할 길을 다시 가늠하는 것. 내가 살 수 있는 동안의 기간만큼 할 수 있는 일, 그것이 나를 위한 존재적 확인이든, 사회적 확인이든 그것은 개인의 몫일 뿐. 나도 초록님의 문에 기대어 세상을 다시 본다. 그것이 이 시의 의미다.


coolpoem초하


초록
초하님 시평 감사합니다.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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