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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초하 
Subject  
   새노님의 <라일락>을 읽고
라일락


지난 초겨울 아버지는 돌아가셨지요
십 년전 먼저 가신 어머니와
합장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담배를 즐겨 피우셨죠
병이 깊어지고
어머니와 점점 가까워지자
잔소리가 들리는 것인지
죽어서도 못끊을 것 같던 그것도
잊어버리게 되더군요
해가 바뀌고
새봄이 날아들었는데
아버지는 여전히 담배를
끊지 못했더군요
오매불망 피우시던 꽃들을
다시 피워올리시대요
코에 익은 담배향이 풀풀 살아나오는
그 곁에 설 때마다
뿌리에서 아련히 어머니의 잔소리가 들렸죠
아버지의 백만불 짜리의 미소처럼
살짝 미풍이 인듯 달아올랐다가
떨어지는 재에서도
미치도록 그리운 향기가 나는 건
어머니가 곁에 있기 때문이리라 여기며
오래도록 떨어진 재를 쓸지 않았죠



    사람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나를 그는 어떻게 기억할까. 기억나지 않는 얼굴, 다만 오랫동안 서가의 책들을 어루만지던 손가락들만이 내 기억에 남아 그를 지킬 수도 있고, 어느 날 환한 햇살을 안고, 눈부신 황금빛으로 물들던 머리카락만을 기억할 수도 있다. 기억은 내가 안고 싶은 것도 손에 쥐고 언제나 매만지고 싶은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그런 제멋대로의 기억이 그리움으로 치환되면 그것은 한없이 얇은 구름 한 장 위에 발을 내딛는 것과 다름 아니다. 저 넓고 깊은 슬픔의 낭하로 언제든 떨어질 거라는 각오를 해야한다는 것. 향기, 냄새, 바람을 따라 떠도는 이런 종류의 기억은 더더욱 그 슬픔의 깊이를 더한다. 라일락 꽃 향기, 담배 향기, 그리고 그 냄새를 따라 오는 소리들. 눈 감고 코를 열고 귀를 열고 바람에 나를 맏긴다. 그런 슬픔이다, 이 詩는. 남아 있어도 바람을 따라 사라질 그런 기억을 부여잡는 어느 봄날의 일기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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