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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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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님의 <늙은 밤나무>를 읽고

  늙은 밤나무


  외로운 새처럼 고개를 꼬고 창밖을 보면
  마당가 늙은 밤나무도 홀로 씨부렁대고 서있다
  곁에 다른 나무 있지만 가까이 가지 않는다
  손이 닿듯 해도 서로 그늘과 가지에 얽힐 것을 알기에
  동자 꽃 피고 지는 사이에서 지켜만 보고 있다

  밤나무도 날 가끔 쳐다보는 듯 하고
  어쩌다 서로 시선이 마주치기도 하지만
  이미 늦은 저녁이라 더 멀고 귀까지 먹는다
  애써 다가 가도 금방 외로움은 서로 얽크러져 끄덩이 잡는다
  그래서 저 나무나 나나 간격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 거리는 정말 오랜 세월을 돌아 왔고
  눈 비 올 때마다 옹이는 더욱 커지고 욱신거린다

  등 굽은 나무들의 생애는 거의 졸음이다
  몸이 땅을 익히려 땅으로 기운다
  새들의 노래에 금방 훌쩍이기도 한다
  늙은 소 말 대신 눈꼬리를 먼저 적시듯
  그뿐인가 어쩌지 못하고 오줌을 자주 흘린다
  오래된 것의 지린내의 내력이 생긴 것이다
  자식 자 가지 지의 그런 물 아니고
  그냥 홀로만의 눈물과 좆물
  서로 상통하는 이 두 가진 틀림없는 늙음이다

  그러나 바람은 아무 것도 모르고 알려하지 않고
  마른 등피에 생채기를 내어 다시 피 몇 방울 돋는다
  산발한 삼월 눈곱 낀 눈에 억지 같은 생이 고인다



봄에 이 시를 읽고 무언가 주절거리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이런 기분이 들게 된 것은 내게 퍽 드문 일이었는데, 아마도 생각하기에 이 시가 시인의 시력(詩歷)에서 중요한 변곡점에 위치한 작품이 아니겠는가 하는 내 나름의 어떤 직관적인 느낌이 있었던 까닭이다.

우선 내가 이 시에서 주목한 것은 시적 대상과 화자 사이의 ‘거리’였다. <산국 앞에서>나 <가을의 길>, <유월의 창> 등 이전의 전원시들에서는 시인이 시적 대상으로의 즉자적인 몰입과 직접적인 자기동일화를 보여주었던 데 비해 이 시에서의 화자는 이를 자제하고 시적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시에서 이 거리는 ‘외로운 새처럼 고개를 꼬고 창밖을’ 지켜보는 화자의 행위로 구체화되는데, 이 지켜봄의 순간은 화자가 밤나무의 시선을 의식하고, 또 그 나무와 ‘시선이 마주치기도’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 시간은 화자가 나무로부터 더 멀어지고 귀까지 먹는 시간이며, 화자가 자신과 밤나무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로서의 ‘간격’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정 이 시의 아이러니는, ‘간격’으로 표현된 대상과의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틀림없는 늙음’을 매개로 화자가 나무와 ‘서로 상통하는’ 교감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 되겠다. 내가 이 시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시적 진술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시가 이전의 전원시들과 확연히 다른 점은 주정적 토로와 외면적 묘사를 배제하고 자기 응시를 통해 쓸쓸한 삶의 비의를 담담한 어조로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를테면 ‘얼크러져 끄덩이 잡는 외로움’이나 ‘눈비에 더욱 커지고 욱신거리는 옹이’ 같은 진술이 바로 그러한데, 이 시의 중심 대상인 늙은 밤나무는 화자의 시적 등가물로서 시인의 쓸쓸한 처지와 고독한 내면 풍경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이 쓸쓸하고 고독한 풍경은 다시 ‘등 굽은 나무들의 생애는 거의 졸음’이라는 빛나는 시적 성찰로 이어지고, ‘오래된 지린내의 내력’으로 시에 각인된다. 그리하여 이 시가 시인의 다른 전원시들과 변별되는 곳은 이처럼 삶의 쓸쓸함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특별한 시적 성취의 지점이다. 나는 이 성취가 균형잡힌 시적 원근법을 통해 시인이 주정적 몰입을 배제하고 삶과 자연에 대한 내밀하고도 끈질긴 성찰의 시선을 보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시인의 시력에서 중요한 변곡점에 도달한 작품이라고 믿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나루
시쓰기에 있어서 관조와 현실의 간극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시의 성패를 좌우한다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시인형님의 이 시는 네가 말한 그, '변곡점'에 섰다는 데 동의하는 바임.
 201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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