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80   4   1
  View Articles

Name  
   새벽 
Homepage  
   http://blog.naver.com/bigcoda
Subject  
   장다리님의 <입석>을 읽고

  입석

  엄마가 토마토 따러 건너가신
  도랑에서 돌을 세우며 놀았다
  어항에 갈겨니가 꽉 들어찬 것도 몰랐다
  미늘이 매달린 나뭇가지 잡고 물 밖으로 달렸다
  유리에 움푹 패인 살에다 갑오징어 뼈를 갈아 채워넣었다
  라면 스프에 홀린 매운탕이 입속을 즐겁게 했다
  입석은 물속에 누웠다

  어머니는 입석을 좋아하셨다
  이십리 길은 너끈히 걸어다녔고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오셨다
  가끔 외가를 갈 때는 입석을 끊어 기차를 타셨다
  어머니에게 자리는 앉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이었다

  입석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
  걷기 힘들 정도로 굽는 부분들이 힘을 못 썼다
  온 몸을 바퀴 삼아
  동글동글 굴러다녔다

  새들이 우는 곳에
  돌 하나 심고 오는 길




지금에서야 고백하자면 내게 장다리님의 시들은 참 어려웠어요. 시적 주제를 잡아채거나 읽어서 시의 일관된 이미저리를 엮어내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진술의 일차적 의미조차 감잡기 난감했던 시들도 있었죠. 뭐, 그건 아무래도 아둔한 내 이해력이 문제인 게 확실하지만 그럴 때마다 전적으로 또 그 이유만은 아닐 거라고 감히 항변해 볼 엄두가 아예 안 생겼던 건 아녜요. 아무튼 각설하고 장다리님의 근작시들은 일단 내게 이해될 수 있는 수준으로 읽혀서 좋다고 말해야겠네요. 특히 이 <입석>은 어제 처음 읽었을 때 꽤 매끈하고 근사하게 뽑혀나온 시편이 아니겠는가 나를 살짝 감탄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했죠. 어머니에 대한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해 어머니를 장사지내고 돌아오는 길로 매조지되는 이 시는 간결하고 담담한 진술 속에 사모(思母)의 정을 효과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는 시예요. 알다시피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입석’이란 단어인데, 이 단어는 시에 네 차례 반복해 등장하죠. 이 반복은 시에 유기적 통일성과 운율 효과를 부여해요. 하지만 이와 별개로 시에서 이 단어의 의미가 매번 달리 쓰이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당연히 이건 동음 관계에 있는 단어의 의미 변용을 통해 시적 의미를 풍성하게 하고 또 시적 이미지를 다채롭게 하기 위한 시인의 의도에서일 테죠. 그랬다면 ‘입석’이란 단어의 활용은 꽤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구성의 측면에서도 1연의 물속에 누운 입석을 4연의 무덤 속 어머니와 대구를 이루게 한 것 역시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간단하게 몇 마디만 쓰려 했는데, 요령없이 또 길어지려 하니 여기서 줄여야겠네요. 어쨌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 마디로 <입석>은 시적 내용과 형식이 서로 적절하게 조응하는, 그래서 더 나은 시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작품이라는 것, 바로 그거예요. 아, 잊을 뻔했는데, 고장난 입석이 '온 몸을 바퀴 삼아/ 동글동글 굴러다녔다'라는 구절은 참 괜찮은 표현이죠?





장다리
좋은 평, 고맙습니다. 늘 편안하시길  2015/10/17    
Prev
   장다리님의 <입석>을 읽고 [1]

초하
Next
   시인님의 <늙은 밤나무>를 읽고 [1]

새벽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