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80   4   1
  View Articles

Name  
   초하 
Subject  
   장다리님의 <입석>을 읽고
입석

엄마가 토마토 따러 건너가신
도랑에서 돌을 세우며 놀았다
어항에 갈겨니가 꽉 들어찬 것도 몰랐다
미늘이 매달린 나뭇가지 잡고 물 밖으로 달렸다
유리에 움푹 패인 살에다 갑오징어 뼈를 갈아 채워넣었다
라면 스프에 홀린 매운탕이 입속을 즐겁게 했다
입석은 물속에 누웠다

어머니는 입석을 좋아하셨다
이십리 길은 너끈히 걸어다녔고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오셨다
가끔 외가를 갈 때는 입석을 끊어 기차를 타셨다
어머니에게 자리는 앉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이었다

입석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
걷기 힘들 정도로 굽는 부분들이 힘을 못 썼다
온 몸을 바퀴 삼아
동글동글 굴러다녔다

새들이 우는 곳에
돌 하나 심고 오는 길






3년전에 쓴(아직도 같은 페이지에 있어요) 장다리님의 <무더위>의 시평에서 운와 율이 만들어내는 音樂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立石, 立席. 동음 이의어에 대한 유희는 단순할 수도 있는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이 시의 장점은 그 유희를 관통하는 거대한 서사를 언어적 유희로 단순화해 그 울림의 깊이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통해 시의 폭과 깊이를 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통된 정서의 울림이 가져다 주는 커다랗고 먹먹한 슬픔을 아무렇지 않은 척 돌아앉은 시의 모양새가 더없이 아름답고 담담하다.

첫연의 문장들은 물 속의 돌에 관한 이야기이다. 엄마가 일하러 가신 동안, ‘나’는 도랑에 돌을 세우며 놀았고, 낚시를 하면 놀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세워놓았던 혹은 세우려했던 돌들이 ‘누웠다’는 점이다. 이 누운 돌들은 마지막 연에 담담히 세우고 돌아오는 그 돌들과 首尾的 대비를 통해 돌을 세운다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상징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누운다는 의미가 2연의 立席과도 이어져, 입석에 대한 의미변형(立石에서 立席으로)에 다중적인 인상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미늘/유리와 같은 날카로운 것들의 상징이 유년기의 불안이나 혹은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상징으로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조금 난해한 부분으로 읽혔다. 전반적인 시의 단순하고 정갈한 진행으로 볼 때는 좀 더 의미들을 연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입속과 입석이 또 다른 변형도 좋았다.

2연부터 마지막 4연은 장다리님이 가진 운율과 해학의 근원이 단순화할 때 얼마나 큰 의미들을 만들어 내는 지에 대한 좋은 예다. ‘어머니에게 자리는 앉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이었다’, ‘온 몸을 바퀴 삼아/동글동글 굴러다녔다’는 절창과 함께 이젠 엄마가 아닌 어머니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은 세월의 순리와 받아들여야 하는 그 시간의 의미를 천천히 불러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4연의 두 줄은, 이 시의, 백미다. 나는 울지 않는다. 담담히, 새들이 ‘우’는 곳에 돌을 세우고, 뒤를 돌아 뚜벅뚜벅 내려온다. 해질녘일 것이다. 햇살이 뉘엿뉘엿 바람을 재우며 떨어진, 밤이 오기 전, 잠깐의 그 푸른 시간. 그런 슬픔의 색을 천천히 이 시에 그려내는 장다리님의 붓이 계속 마르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coolpoem초하



장다리
좋은 평, 고맙습니다. 늘 편안하시길.  2015/10/08    
Prev
   자운님의 <다리 위에서>에 대하여 [2]

새벽
Next
   장다리님의 <입석>을 읽고 [1]

새벽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