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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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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log.naver.com/bigcoda
Subject  
   자운님의 <다리 위에서>에 대하여

  다리 위에서


  이 길은 사라지기 위한 길
  자신이 알았던 것들을 남기고 떠나는 길
  너무 무거워서
  너무 낡아서
  너무 슬퍼서
  너무 비려서
  너무 사랑해서
  떠나는 길

  버리고 뱉어낸 것들이 흘러간다
  한때 뜨겁게 삼켰던 것들이 소용돌이친다

  물안개는 자주 피어올랐고
  사방 어지러운 소문과 소란에
  멀미를 머금은 사람들이
  다리를 건넌다

  붉은 안개를 얼마나 마셔야
  햇살이 퍼질까

  말라가는 생각들이 안절부절
  겨울 울음을 토한다

  파닥거리는 가슴들이
  노래와 웅변을 분류하는 동안

  한적하고 캄캄한 다리 위에서
  별빛을 헤아리는 동안

  변경으로 가는 길
  손 내미는 바람

  바람의 손을 잡고 흘러갈 것인가

  또 낯선 바람을 만날 것이다
  낯선 길에는 낯선 저녁이 기다릴 것이다

  단단하고 예리한 웃음이 바람처럼 퍼질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바람의 손을
  포기하지 않는 시간이 희롱할 것이다

  환원되지 않는 집착의 굴레가
  촘촘히 그물을 치고 발 아래에서 기다리는 저녁

  다급한 꿈들이
  분열하느라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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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님은 다산성의 시인이다. 2003년 등단 후 벌써 여섯 권의 시집을 상재한 자운님의 지치지 않는 창작열과 마르지 않는 시정은 시인통신 문우들에게 언제나 귀감이다. 왕성한 시작 활동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작품의 수준을 고르게 유지하는 것 또한 모두에게 그저 부러울 따름!!

이달의 연작시에 올라온 자운님의 시 <다리>와 <다리 위에서>를 읽었다. 이 두 편의 시는 같은 제재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여러 측면에서 대조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두 편 중에서 내가 좀 더 언급하고 싶은 건 <다리 위에서>이다. 유년 시절의 구체적 경험에 기반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단정하고 깔끔한 진술로 옮겨낸 <다리>에 비해 <다리 위에서>는 시적 화자의 상황과 시적 메세지, 시적 표현들이 다소 혼란스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시인은 <다리>의 마지막 연에서 어머니가 한사코 다리 건너기를 외면한 이유를 ‘어지러워서/ 물 흐르는 것을 보니 어지러워서./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서.’라고 썼다. 이 진술의 연장선에서 보자면, 화자는 지금 유년 시절의 그 어머니처럼 ‘흘러가는 시간의 어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어 ‘다리 위에’ 서 있다. 화자가 선 그 다리는 ‘사라지기 위한 길/ 자신이 알았던 것들을 남기고 떠나는 길’ 위에 놓인, 그래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다리이다. 아니, 단정적 진술을 피해 말해 보자면, 아마도 이 다리는 피안과 차안, 혹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 가로놓인 다리일는지도 모르겠다. ‘사방 어지러운 소문과 소란에/ 멀미를 머금은 사람들이’ 건너가는 그 다리 위에 서서 화자는 ‘파닥거리는 가슴들’로 ‘노래와 웅변을 분류하’거나 캄캄한 밤의 ‘별빛을 헤아’린다. 이어 화자는 변경으로 가자며 ‘손 내미는 바람’에 이끌려 떠난 ‘낯선 길’에서 ‘낯선 바람’과 ‘낯선 저녁’을 만난다. 이 시의 후반부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바람’은 시의 제재인 ‘다리’와 함께 시의 핵심 모티프이자 시적 통일성을 부여하는 지배적 시어이다.

알다시피 시는 원래 모호성과 다의성을 미덕으로 삼는 장르이며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로 다양한 해석을 끌어내는 양식이다. 그러나 시적 해석으로의 초대는 역설적이게도 구체적 진술와 명징한 메타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에서 <다리 위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시이다. 시적 화자의 상황과 시적 메세지는 불명료한 진술과 관념어들로 가려져 있어 잘 잡히지 않는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이를테면 ‘뜨겁게 삼켰던 것들/ 말라가는 생각들/ 겨울 울음/ 환원되지 않는 집착의 굴레/ 뜨겁게 분열하는 다급한 꿈들’ 같은 표현들로 배가된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통해 시적 상황과 메세지를 평이하지만 구체적이고 적확한 표현으로 잡아챈 <다리>에서와 달리 시인의 특장점이 대부분 사라져버린 이 시가 시적 감동의 측면에서나 시적 울림의 측면에서나 그 깊이가 많이 얕아진 것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요컨대 관념시로 기울어질수록 시는 보다 구체적이고 명징하며 적확한 진술을 통해 시적 상황과 메시지가 뒷받침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리 건너편의 세계’가 끝내 제시되지 않은 채 시가 마무리된 것 역시 개인적으로는 아쉽게 여겨지는 부분이다.

한결 정제되고 적확한 표현으로 시적 감동을 실어나른 <다리>가 아닌, <다리 위에서>를 어쭙잖게 언급하게 된 것은 자운님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과 부러움의 발로 때문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자운
새벽님, 바쁜 중에 시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건필하세요.~~  2016/03/06    

새벽
제가 좀 길게 주절거리긴 했는데, 영양가 있는 말들만 잔뜩이어서 자운님께 면목없게 되었습니다. 죄송하고요, 부디 용서를!!  201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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