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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경미 
Subject  
   엄마의 바다, 를 읽고
엄마의 바다



해안선도 없는 대양

엄마의 마음이 그려 놓은 쉼터
거기에는 한없이 받아주는
따스한 눈물을 느낀다

산악같은 파도도 스스로 주름살 펴고
환하게 잠드는 곳
아무리 보채고 헤엄질쳐도
용서의 끝이 없는 바다

거기에 나는
한 번도 헤어나지 못하고
숨어사는 태양이 된다

깊이 빠져 더욱 푸르게
반짝이는 별들의 고향
엄마의 바다

날마다 아침이면 솟아오르는
광명의 빛으로
일어서기 위해

평생을 안아도 못다한 발버둥
소망의 태양이
잠든 바다

********

la mer. 불어에서 바다는 여성형 명사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바다는 남성형 명사로 그려진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포세이돈Poseidon은 삼지창을 휘두르고 파도의 흰 포말을 타고 질주하면서 해안선을 떨게 하는 자. 아들 폴뤼페무스의 외눈을 잃게 한 오디세우스를 십 년 동안 바다에서 방황하게 하였다. 이 때의 바다란 어떤 곳인가. 온갖 위험이 도사린 곳이다. 궁극적인 유토피아라기보다 과정의 방황과 모험으로 바다가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헤밍웨이의 바다도 84일 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어부 산티아고가 사투를 벌이는 운명이다. 자신의 배보다 더 큰 물고기와 며칠 밤낮을 씨름하다가 마침내 배에 나란히 묶어 마을로 돌아왔을 때에는 상어의 습격으로 뼈만 남아 있었던 그 바다. 그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의 주인 김종삼의 漁夫는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이 詩에서 바다는 ‘어머니’ 로 그려지고 있다. 여기에서 서구와 구분되는 동양적인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동양에서 자연은 개척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으로 돌아가는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곳이다. 그런 자연관이 주로 대지모신大地母神 Gaia 의 모습으로 문학 작품 속에서 형상화 되었다면 바다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는 점이 이 시의 독특한 점이다. 이 시에서 바다는 한없이 받아주고 끝없이 용서하는 무변無邊의 존재. 그래서 ‘해안선도 없는 대양’ 이다. 이런 바다에서 ‘나’는 깊이 빠졌다가 더욱 푸르게 반짝이는 ‘별’ 이 되고 지쳐 쓰러졌다가도 날마다 새롭게 솟아오르는 ‘해’ 가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빠지다’ 와 ‘솟아오르다’ 가 바다라는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죽음과 재생이 함께 이루어지는 바다의 영원성을 표현한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훼손된 세계가 모성으로의 회귀를 통해 회복되기를 바라는 시인의 소망을 엿볼 수 있다.

모성으로의 회귀가 유아기로의 퇴행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세계를 통과해야만 한다. le mer를 통해서만 la mer에 이를 수 있다는 역설. 사랑의 어머니는 언제나 전사戰士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존재이기도 하다. 아들의 성숙을 위해 커다란 칼날로 탯줄을 끊고 험난한 세상 속으로 집어던진다. 그리고 오징어 한 마리가 불판에서 오그라들며 구워지든 말든 무심한 바다를 보라. 어머니는 또한 혈통에 가장 매정한 존재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시의 바다는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한 바다가 아니라 고뇌하는 바다이다. 파도의 ‘주름살’ 태양의 ‘발버둥’ 같은 단어에서 그런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수천 번 밀려왔다 밀려갔다 바위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의 시퍼렇게 멍든 모습이나 날마다 거듭 태어나서 가장 먼 곳까지 빛을 나누어주는 해日의 여행이 la mer에 이르고자 하는 le mer의 노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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