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80   4   1
  View Articles

Name  
   보리 
Subject  
   카멜을 위하여--1
花園 가는 길



저녁 노을에 길어질 대로 길어진 내 그림자를 보고 놀란 적이
있었네. 형광등이 자기 몸을 비틀며 불을 켜는 저녁, 그림자는
골목이 끝나는 곳에서 담장 하나를 넘으려 애를 쓰고 있었네.
완전히 넘어가려면 한 번 더 목을 꺾어야 하는 담장, 철망에
걸린 장미가 몸에 흠집을 내며 붉어지고 있었네.

어떤 노래로도 너를 불러낼 수 없었던 저녁, 그 담장 넘다가
나는 보았네. 먼지를 일으키며 유리창에 몸 부딪는 나방 한 마리.
새들이 겁도 없이 고압선을 움켜잡고 노래를 불러주던 저녁이었네.
길고 긴 어둠이 내 안에서 걸어 나와 花園으로 가던 길. 화단 테
두리에 머리를 박으려는 붉은 벽돌들의 몸부림을 보았네.





           루이 암스트롱*



용정리로 이사 와서 매미 울음을 들었다. 무릎이 까지면서도 걸음마를
배우려고 아이가 애를 쓸 무렵이었다. 곰곰이 듣고 있자니 매미는 아무
래도 자신을 위해서 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게 다였다면 그는 차라리
언더그라운드에 남아서 노래를 부르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젊은 날의
암스트롱도 그 소리를 들으며 악기를 배웠다고 전해진다.

매미는 여름 내내 자기 입을 찢어서 노래를 만들었다. 마치 누가 더 크게
찢어버리는가 내기라도 하듯이, 아무려나 한 계절이 다 가도록 하나 뿐인
입이 저토록 오래 찢어지는 것을 보면 노래란 반주가 없어도 아름다운 법이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아이 무릎에 매미 허물이 내려 앉았다. 딱정이를 뜯어
내니 철 지난 매미 울음 소리가 들렸다


*루이 암스트롱의 젊은 날은 어두운 편이다 그 당시 대다수 흑인들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절도와 폭력, 마약 등으로 형무소에 자주 갇혔다고 한다.
그는 그 안에서 악기를 배우게 되었다. 트럼펫을 불기에는 입이 좀 작았지만
너무나 배우고 싶었던 나머지 스스로 입을 찢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대답 없는 아버지



      어머니 눈물 밤새도록 양철 지붕 때리고
      창 틈으로 한 번 나간 불빛들 다시 돌아오지 않았네
      물기에 찍어서 바라보는 불빛의 아름다움
      그것이 내 삶의 무늬가 되었네

창문도 열지 않고 담배 피우는 아버지. 천식 앓는 동생이 기침을
할 때마다 짜증을 부린다. 너희들 제발 좀 나가 놀아라. 어머니는
말없이 아버지가 물린 밥상 끝에 앉아 식은 밥을 오래오래 입안에서
데워 드신다. 아버진 벌써 드러누워 부러뜨린 성냥으로 이빨만 쑤시고.

      부러져 점화되지 않던 날들이여! 우리
      햇살이 미치지 않는 아카시아 나무의 연한 줄기 아래로
    갔네
      그늘에서 날리는 종이 비행기 멀리까지 날아가지 않았네

희미한 알전구 불빛 아래서 어머니가 옥수수 수염 삶은 물을 마시고 있다.
잠결에 듣는 라디오 소리 우리 잠든 방안을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로
바꾸어 놓는다. 세월이 약이야 아버지는 궂은 날씨를 불평하며 재떨이에 가
래를 뱉는다. 안돼요 다시 그곳으로 갈 순 없어요. 몸에 하수도가 묻혀 있는
사람처럼 어머니는 오랫동안 울기만 하신다.

      아버지 가래를 뱉으면서 내 꿈으로 들어왔네
      어머니 아무런 변명도 없이
      마른 흙 한 삽 덮어 주셨네
      그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피어 있는
      채송화 같은 것들

겨울 내내 마른 옥수수 수염을 삶아 드셨지만 신경통은 어머니의 무릎을 떠나지
않는다. 그 해 겨울 닭장에선 피 묻은 계란만 나오고 닭들이 죽어 가고 있어요.
우리들은 아우성쳤지만 우멍거지 아버진 아무런 대답이 없고 자기 손을 적시며
오줌을 누고 있다.

      수돗가 양은 대야 안에
      하루 종일 붉은 노을이 떴네
      마당으로 지나가는 햇살을 쓸어 모아
      어머니 계란에 묻어 있는 핏자국을 닦으셨네

탄불을 갈아 주려고 어머니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신다. 그때마다 어머니 관절에서
녹슨 대문 소리가 들린다. 잠결에도 들려 오는 삐거덕 소리. 세월이 약이라고 믿고
있는 아버지에겐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어머니 걸어 논 달력처럼 얇아져 간다.

      여러 번 뒤척이며 깊어지던 유년의 잠
      바람 부는 대로 삐거덕거리시는 어머니
      계란처럼 잘 세워지지 않는 그 얼굴 위로
      궂은 비 오래 내렸네



             겨울 나무



병이 나을 것 같지 않아 편지를 씁니다. 맞바람의 뒤끝은 맵기도
하네요. 여긴 한 번 스쳐간 사랑이 다시 찾아오는 법이 없는 곳이
랍니다.
분명히 눈이 내렸었는데 지금 보니 서 있는 자리가 젖어 있네요.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진실이 이렇게 발목을 적시는 날들 한가운데
뿌리를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기쁨 때문에 날이 밝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나곤
합니다. 어제와 다른 자리가 아파오는 것도 위로가 되는군요.

요즘도 쪽문은 열어둔 채 지내고 있습니다. 끝까지 꾸지 않은 꿈이
남아 있다고 그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종이 접기



  아이가 종이 접기를 하고 있다 한 번도 접힌 적이 없는 종이는
반듯하지만 무엇을 접으려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생각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일까  아이는  접었던 곳을 펼쳐서
다른 방향으로 접는다  짜증 한 번 부리는 일도  없이 접었다 폈
다 하기를 벌써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고 있다

  길을 잘못 들어섰던 적이  내게도 있었다 지우지  못하고 빠져
나온 골목길,그 발자국들이 지금도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무
모할수록 사랑은 아름다워진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접을수록 종이는 구겨진다 접혔던 흔적들은 상처로 남는다 종
이는 그것들을 몸에 지닌 채 학이나 나비가 될 것이다

  봄날 창틀, 방향을 정했는지 나비  한 마리 어디론가 날아간다
몇 번이나 자기 몸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잘못 접혔던 자국들이 날개를 이루는 무늬로 남았다



엽서 - 채석강에서



    발등을 적시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곳에
  있습니다 당신에 대한 기억들이  강물의 모습으로 되돌아
  오는 저녁, 갈매기 울음 소리가 반 남은 노을에도 환히 비
  치고 닻을  내린 배처럼 묶어  둘 수 없는  바람이 타 놓은
  가르마를 헝클어 놓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결국엔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는,  삶이란
  얼마나 깊은 고임일까요 깊이를 가늠하려고 돌멩이 몇 개
  를 던져볼 요량이지만 갯자갈일 뿐,그것은 물이 끓기만을
  기다리는 도마 위의 감자 같은 갯자갈일 뿐

    수평선은 길게 한 획을 그어 사람의 눈빛을 다스리고 있
  고 옮겨진  돌멩이를 제자리에  놓기 위해 멀리서  파도가
  오고 있습니다




특히 좋아하는 카멜의 시 몇 편을 추려본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카멜은, 상처의 시인이다. 그러니 카멜의 상처는 어디서 시작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 다음 순서다. 나는 그걸 유년과의 결별에서 찾고 싶다. 이제야 고백하자면, 카멜의 상처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 수 없어 애먹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카멜의 시평 중에서 힌트를 얻었다. 부처님 눈엔 부처님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카멜은 유독, 유년의 상실을 노래한 시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그에게 어른이 되는 일은 상처를 배우는 일이다. 그러니까, 누구처럼 가난의 슬픔이 없이도, 또 누구처럼 사랑의 상실이 없이도, 광주의 아픔이나, 아무튼간에 그렇고 그런 이유가 없이도 그냥, 카멜은,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것, 그것 만으로도 무진장 슬프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전제를 찾지 못해 꽤나 여러날 고심했다.

전제가 성립됐으니 그 다음을 보자. 카멜은 상처를 찾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째 어른이 되는 일은 상처를 입는 일인데, 이 상처는 번번히 아름다운 거라고 끝끝내 지치지도 않고 싫증도 안내면서 매번 주장한다.

여러가지 시들에서 이 점을 엿볼 수 있지만, 대표적으로 <루이 암스트롱>을 살펴보면 이렇다. 아이는 걸음마를 배운다. 걸음마를 배운다는 것은 '세상밖으로 나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상에 나아가 제대로 걷는 자가 어른이다. 그런데 여기서 카멜은 걸음마 연습과 매미/루이 암스트롱의 노래 연습을 하나로 겹쳐 놓고 있다. 둘 다 모두 상처를 통해 걷거나/노래한다.  

딱지가 매미가 되었는데, 눈여겨 보아야할 점은 흔히 말하는 ‘나비’가 아니라 ‘매미’가 되었다는 거다. 나비는 예쁘지만 매미는 분명 징그럽다. 7년을 기다려 허물을 벗었다는데,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참 못생겼다. 여전히 그 자신이 허물인 것처럼 느껴지는 외양을 가지고 있다.

7년을 기다려 얻은 모습이 아름다운 나비가 아니라 못생긴 매미다. 이게 바로 상처다. 유년에서 어른이 되는 길이다. 그러니까 어른이 돼서 바라본 삶은, "발등을 적시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곳"이며, "누구라도 결국 한걸음 물러설 수 밖에 없는 곳이다."(엽서-채석강에서) 대략 <화원가는 길>의 어조가 어른 카멜이 세상을 보는 어조라고 생각된다. 또 <대답없는 아버지>를 읽으면 대충 그 정도에서 유년에서 성년으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상처를 얻는 과정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루이 암스트롱>으로 돌아가자. 좀 아까 나는 아이의 걸음마와 매미까지 왔다. 헌데 이쯤에서 카멜은 한 자락을 더 걸쳐준다. 째즈의 명인, 암스트롱의 이야기를 슬쩍 끼워넣었다. 못생긴 매미가 명인의 목소리를 얻었다. 상처를 가진 존재가 아름다워졌다.

참고삼아 <종이접기>를 보면, '어린' 학이나 나비, (여기서는 매미의 대척점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이 아니라 어른 곤충으로 받아들여야 맞을 것이다)는  '접은 흔적'으로 표현되는 상처를 지닌 채로 '어른' 학이나 나비가 된다. 접었다 폈다 하면서 구겨진 것이 나비라는 것, 그게 아름답다는 것, 이름붙여진 어떤 존재라는 것, 에 카멜 시의 비밀이 있다. 나비니 매미니 어쨌든 그런 이름이 붙어진 '다 자란' 것들이 아름답다고, 날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잠시 말했던 <화원가는 길>을 보면 어른 카멜의 절망의 어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에서 나타나는 풍경은 절망에 가깝다. 어떤 노래로도 너를 불러낼 수 없고, 그래서 유리창에 몸 부딪치는 나방처럼 나는 상처를 입는다. 얼마나 아픈지 붉은 벽돌이 화단 테두리에 머리를 박아버릴 지경이라고 그는 말한다.  시 속에서 “형광등은 자기 몸을 비틀며” 불을 켜야 하고 “장미는 몸에 흠집을 내어야 붉어”진다.

그런데 바꿔 말하면, 자기 몸을 비틀며 빛을 내야 비로소 형광등이 되고, 몸에 흠집을 내어 피로 물들지 않고서는 붉은 장미가 될 수 없다. 또 바꿔 말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한결같이 상처 없이는 바로 그 존재기 되지 못한다. 다시 바꿔 말하면 존재하는 것은 모두 상처투성이이다. 그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 마음은 제 “그림자에도 놀란 정도”로 여려졌다.

그래서 카멜은 <겨울나무>를 통해 “병이 나을 것 같지 않다”라면서 오늘은 “어제와 다른 자리가 아파온다”고 고백한다. “한 번 스친 사랑이 다시 오지 않아도” 매일같이 “새로운 자리가 아프”고 그런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진실을 되뇌이면서 까멜은 뿌리를 내리(고 매미가 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뿌리를 내린다는 것과 정착한다는 것, 그러니까 어른이 된다는 것이 같은 의미임은 자연스럽다.

상처를 아름답다고 하는 것,  매일매일 다른 자리가 아파오지만, 그게 위안이라는 것, 이게 카멜의 결론이다. 멀리 떠나온 유년으로부터, 상처를 가진 어른이 별볼일 없는 이 삶을 인정하기 위해 내린 안간힘이라고, 나는 읽었다.  


Prev
   '연산홍'을 읽고 [1]

까멜
Next
   '베네치아'를 읽고

까멜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Ze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