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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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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암님의 <길, 잃어버린 기억>을 읽고
길, 잃어버린 기억

쉬지 않고 밀려오는 안개에
꼬리가 잘린 길이 사라졌다
불빛을 허리로 감아 올린 채
돌아가는 그림자 뒤로  
바라본 세상은
버려진 고양이처럼
웃고 있었다

더 이상 다가서지도
돌아서지도 못하던 날선 웃음에
하나 둘 흔들리던 불빛

한걸음도 내딛지 못한 채
주섬주섬 기억을 챙기던
그날,
내 낡은 주소가 발목을 겹질린 채
천천히 돌아왔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경쟁에서 밀리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삐걱거린다. 그 결과를 놓고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말하기도 한다. 그게 자연스러운 감정일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길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면서도 그 과정에 대해서는 안개나 날 선 웃음으로 돌려 세운다. 어떤 경험의 산물인 것 같은데 모호하다. 이 모호함은 문장에서도 이어진다. /불빛을 허리로 감아 올린 채 돌아가는 그림자 뒤로 바라본 세상은 버려진 고양이처럼 웃고 있었다/에서 버려진 고양이처럼 웃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모호하고, 그림자 뒤로 바라본 세상이라는 표현도 말로 풀어내기 어렵다. 2연의 날 선 웃음의 주체도 가늠하기 힘들다.
짧은 소견으론 1연의 <세상>과 2연의 <날 선 웃음>이 모두 앞 뒤 문장의 중심에 걸려 있으면서, 의미를 겹으로 받아 안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장의 표현이 좀 더 세밀하거나 구체적이면 좋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독자의 희망이다.
마지막 연을 쓰기 위한 시라는 생각이 있고, 낡은 주소가 천천히 돌아왔다는 진술에 깊은 느낌이 있다. 낡은 주소로 돌아오는 일도 발목을 겹질린 채이다. 상처를 입고 돌아왔지만 현재의 모습이 전 같지는 않을 거라는 가정은 1연에서부터의 진술이 과거형이기 때문인데, 이처럼 지난 상처를 시로 쓰는 일은 현재의 화자가 아픔을 잊고 털어갈 의지의 형식적 선택이라고 본다.
시는 일기와 달리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되면서 독자에게는 더 깊은 울림과 느낌을 전달한다. 언제나, 시를 읽는 사람의 느낌은<그것이 비록 오독일지라도>그 무엇보다 진실하다. 다소 함축적인 <길, 잃어버린 기억>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지만 많은 생각을 전달한다,  말을 아끼기 때문에 많이 느낀다는 것, 역설적이지만 이게 이 시의 매력이다.    







나루
모처럼 라삔이의 정예로운 길을 보는구만. 나도 처음 이 글을 읽을 때 세아미에게 긴장에 관한 얘기를 한 것 같은데 라삔이 자네도 그런 느낌을 받았나 보군. 인석이 요즘 시간이 많을텐데 자네 평을 읽고 방전된 정신을 충전해야할 텐데.  2016/03/22    

세암
너무나도 부끄러운 글을....평까지 써주시다니...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 뿐 입니다. 왜 나만(?) 사는게 이렇게 녹록치 않은지를...마치 비명을 지르듯이 써내려갔던 몇편의 외침들을 나루님께서 시라고 받아주신 것만으로도 황송(*^^*)합니다만....빨리 초고속 충전해서 조금이나마 덜 부끄러운 얼굴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2016/03/22    

parapin
세암님, 좋게 봐주셔서 되레 제가 고맙습니다. 워낙 오독을 잘하는 스타일이라 약간 걱정도 되었는데...비슷하게 맞춘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건필하시길요.
정예로운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서 검색까지 했습니다. 제가 어찌 그렇겠는지요. 느낌이 같으시다니 좋습니다.
 201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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