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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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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다리님의 <무더위>를 읽고
무더위


훌라후프 같은 성으로 둘러싸인 성읍 끝자락
두루뭉술하게 나이테를 숨기고 있는 성벽을 따라
마을버스가 물방개처럼 뒤뚱거린다
지느러미 같은 시간이 땡볕에 늘어진다
플라스틱 화분을 흥분시키던 대파 한 단
할미꽃인 양 고개 숙이게 하는 뜨거운 계엄령
할머니가 주인인지 슈퍼가 주인인지 모를 구멍가게에서
늙은 접이의자에서 접었다 폈다 하는 허리가 힘겹게 펴진다
봉건왕조의 국새 같거나 일종의 귀두 같은
성의 주춧돌이 나보란 듯이 발가벗고 있는 그 자리
요역 나온 늙은 장정이 앉아있다
펴도 굽은 허리를 장착한 할머니
탁주 한 사발 쥐포 한 마리 배달 나가는 길
온돌 같은 아스팔트를 한 발 한 발 떼어 놓는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것처럼
분위기는 영 아니라 해도
열 받은 볼록거울에 전생이 읽힐지라도
마음만큼은 젊은 서방 마중 나가듯이 설레이리라
찜통 같은 할머니 슈퍼의 치부장에서
다들 늙은이 만들어 발그레한 무더위 속에서



   글이 가지는 하나의 미덕은 운과 율에서 만들어지는 音樂이다. 그런 운율은 낱말과 낱말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문장의 높낮이를 다르게 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추임새를 넣어 가락을 만든다.

   장다리님의 <무더위>는 그런 운율을 토속적 풍경에 넣어 즐거운 가락을 만들어 낸다. 물방개처럼 뒤뚱거리는 마을버스도 그런 가락을 따라 뒤뚱거리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다. 그런 가락이 ‘마을 버스가 물방개처럼 뒤뚱거린다’, ‘늙은 접이의자에서…허리가 힘겹게 펴진다'같은 해학적인 수사들과 만나 어떤 운율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 이 시의 장점이라 생각이 든다.

   아쉬운 점은 너무 작위적인 수사들과 과다하거나 중복된 이미지들로 인해 시가 전체적으로 이미지의 군더더기가 많다는 점이다. 수사와 상관물에는 인과적인 관계들, 혹은 상징적인 의미로 연결이 되어 있어야 그 의미의 깊이를 가지게 되는데 이 시의 수사들은 그런 의미망들의 설정에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훌라후프 같은 성’, ‘나이테를 숨기고 있는 성벽’, ‘플라스틱 화분을 흥분시키던 대파’, ‘일종의 귀두’, ‘온돌 같은 아스팔트’,’열받은 볼록거울’  같은 문장들은 그 상관물들을 통해 시인이 이야기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연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로 인해 전반부에 시작되었던 기분좋은 출발이 점점 불분명하고 과도한 수사들로, 시골 찌그러져가는 슈퍼의 할머니가 이 무더위와 ‘한판’을 하고 있는 정경을 충분히 장다리님이 가진 해학적 운율로 정갈하게 풀어낼 수 있었을 이야기들에 살을 너무 찌워버렸다.
   예를 들어 ‘늙은 접이의자에서 접었다 폈다 하는 허리가 힘겹게 펴진다’라는 문장은 접이의자가 가지는 상관물의 속성을 할머니의 허리와 연결한 점은 좋았으나, 그 중간에 굳이 ‘접었다 폈다’라는 상관물의 속성을 넣어서 글의 재미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했으면 한다. 설명을 줄이고 독자가 상상을 하고 의미를 만들어낼 글과 글 사이의 여백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전반적으로 너무 많은 설명을 하고 있는 점도 장다리님이 고민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이 든다.

   물방개와 지느러미로 이어지는 물의 이미지와 무더위가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을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한 부분도 좀 아쉬웠다. 앞서 얘기했듯이 해학과 운율은 이 시의 장점이자 장다리님이 좀 더 발전시켜 나가도 좋을 듯 싶은 생각이다.



                                     coolpoem 초하


장다리
초하님, 날카로운 지적들 감사합니다. 한 꺼플 더 벗겨야 했는데 집착하다보니 사족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2012/12/28    

초하
도움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이니 걸러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좋을 글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2013/01/01    

장다리
예, 고맙습니다.  201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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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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