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469   24   1
  View Articles

Name  
   무달 
Subject  
   말테의 수기 (10)
말테의 수기 (10)

··· 릴케



나는 이웃을 거의 잊어버렸다. 그에 대해서 품고 있던 나의 관심이 진정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론 나는 가끔씩 프론트를 지나가면서 그 사람에 대한 소식이 있는지, 어떤 소식인지 묻기도 한다. 그리고 좋은 소식일 때는 기뻐한다. 그러나 이것은 과장된 표현이다. 사실 나는 그런 것을 알 필요가 없다. 내가 종종 옆방으로 들어가고 싶은 갑작스런 충동을 느끼는 것도 그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내 방문에서 그의 방문까지는 겨우 한 걸음이다. 게다기 그 방은 잠겨 있지 않다. 나는 그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어떤 방이라도 어렵지 않게 머리 속에 그려볼 수가 있고, 그 상상이 대충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웃사람의 방만은 언제나 상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러한 사정으로 내가 그 사람의 방에 흥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옆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양철로 된 물건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는 그것이 분명 깡통뚜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불안하지는 않다. 그 일을 깡통뚜껑 탓으로 돌리는 것이 내 기질에 맞을 뿐이다. 그 학생이 뚜껑을 가져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가 방을 치우고 그 뚜껑을 원래 자리인 통 위에다 올려놓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 두 부분이 어울려 깡통이라는, 정확히 말하면 둥그런 깡통이라는 간단하고 잘 알려진 개념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깡통을 이루는 두 부분이 합쳐져서 벽난로 위에 놓여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게다가 그 깡통은 거울 앞에 놓여 있어서 착각할 정도로 실제로 비슷한 상상 속의 깡통이 거울에 비친다. 우리야 아무런 가치도 두지 않지만, 예를 들어 원숭이라면 거울 속의 깡통을 붙잡으려 할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마리의 원숭이가 그 통을 잡으려 할 것이다. 원숭이가 벽난로 위의 거울 앞으로 다가오면 바로 두 마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를 노리고 있던 것은 바로 그 깡통뚜껑인 것이다.
다음과 같은 점에 대해서는 우리 같은 의견이라고 하자. 어떤 깡통의 뚜껑은, 그러니까 테두리가 원래의 모습대로 온전하게 둥그런 깡통의 뚜껑은 통 위에 얹혀 있는 일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뚜껑이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바람이다. 모든 소망이 실현된 것이니 그보다 더한 만족은 없다. 깡통의 튀어나온 테두리 위에 뚜껑이 침착하고 부드럽게 끼워져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마다고 가장 이상적인 상태일 것이다. 그럴 때면 뚜껑은 혼자 놓여 있을 때 스스로의 테두리를 느끼듯이, 탄력있고 날카롭게 자신 속에 들어와 있는 깡통의 테두리를 느낄 것이다. 아아, 그러나 이러한 것을 제대로 평가할 줄 아는 뚜껑은 아주 적다. 여기에 바로 사물이 인간과 교제하면서 얼마나 혼란스러운 영향을 받았는지 드러난다. 예를 들어 인간을 깡통뚜껑에 비유해보자. 그러면 인간은 아주 마지못해서 형편없는 자신의 일 위에 얹혀 있는 뚜껑과 같다.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자신에게 맞는 통을 찾지 못해서 그렇기도 하고, 화가 나서 비스듬하게 얹혀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원래는 제짝인데 통의 테두리와 뚜껑의 테두리가 제각각 다르게 휘어버려서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솔직하게 그냥 말해버리자.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기회만 있으면 통에서 뛰어내려 구르면서 양철소리를 낼 궁리만 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소위 말하는 기분 전환이라던가,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소음이 대체 어디에서 온단 말인가?
사물들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보아왔다. 따라서 사물들이 타락했으며, 자연스럽고 조용한 목적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으며, 주위의 인간들을 본받아 자신의 존재를 착취하고 싶어한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사물들은 자신의 원래 용도에서 벗어나려 하고, 의욕을 잃고, 무관심해졌다. 그리고 인간들은 사물의 이러한 탈선을 발견해도 놀라지 않는다. 인간들은 사물의 이러한 탈선을 발견해도 놀라지 않는다. 인간들 스스로가 이런 일을 자신의 일처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강자이고, 자신들에게는 기분 전환을 해야 할 권리가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물들이 자신들을 흉내내는 것 같아서 화를 낸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들 스스로를 내버려두듯이 사물을 제멋대로 내버려둔다. 그러나 누군가 정신을 차리고 있는 사람, 낮이나 밤이나 자기 자신에 의존하려는 고독한 사람은 타락한 사물들의 반대와 조소와 미움을 받게 된다. 사물들은 못된 양심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한다. 그래서 사물들은 그 사람을 방해하고, 겁주고, 현혹시키기 위해 서로 결탁한다. 사물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안다. 그래서 사물들은 서로 눈짓을 하면서 유혹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유혹은 한없이 커져서 결국 그 한 사람을, 아마도 유혹을 이겨낼지 모를 그 성자를 모든 존재와 신까지도 동원하여 매혹시켜버린다.

이제 나는 그 놀라운 그림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 그림 안에는 사물들이 제한된 일상의 용도에서 풀려나 서로를 탐내며, 기분 전환이라는 알 수 없는 음탕함 속에 빠져 움찔거리며, 서로를 유혹하고 있다. 솥들은 끓어 넘치면서 돌아다니고, 플라스크는 생각하기 시작하고, 한가한 깔때기는 즐거움을 위해 구멍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물들 사이에는 질투심 많은 허무가 집어던진 손발과 마디들이 있고, 그것들 사이에다 미지근한 것을 통해내는 얼굴과 아양을 떠는 잔뜩 부풀어오른 엉덩이도 있다.
그리고 성자는 허리를 굽혀 몸을 오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눈빛을 띠고 있다. 성자는 그것을 이미 보아버린 것이다. 그의 감각은 이미 영혼의 맑은 용액으로부터 떨어져나오고 있다. 그의 기도는 이미 잎이 져버리고, 말라죽은 관목처럼 그의 입에서 튀어나와 있다. 그의 심장은 죽어서 주위의 혼탁함 속으로 흘러 들어가 버렸다. 성자의 채찍은 파리를 쫓는 짐승의 꼬리처럼 힘없이 그의 몸을 건드릴 뿐이다. 제자리로 돌아간 그의 성기는 여자가 풍만한 가슴을 내놓고 혼란 속을 꼿꼿하게 다가오면 손가락처럼 솟아 여자를 가리킨다.
이 그림을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 그림을 의심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것이 저 성자들, 그러니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곧바로 신과 관계 맺기를 원했던 저 열정적이며 성급한 이들에게 일어났던 일임을 상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신이 너무 버거운 존재임을 알고 있다. 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기나긴 작업을 천천히 하기 위해서, 우리는 신을 밀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 작업도 성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것을 안다. 오래전에 동굴과 텅 빈 숙소에서 심을 섬기던 고독한 이들에게 벌어졌던 일이 이제는 이 힘든 작업을 하는 모든 고독한 이들 주위에서도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고독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사람들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전제한다.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사람들이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다.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사람들은 한 번도 고독한 이를 본 적이 없다. 고독한 이를 알지도 못하면서 다만 미워했을 뿐이다. 고독한 이를 지치게 만든 것은 이웃 사람들과, 그를 유혹하는 옆방의 목소리였다. 사람들은 고독한 이에 맞서도록 사물들을 부추기고, 소음을 내게 만들어서는 그의 소리를 지워버렸다. 그가 연약한 어린아이였을 때 다른 아이들이 결속하여 그를 배척했고, 성장해가면서 그는 어른들의 적이 되었다. 어른들은 그가 숨어 있으면 사냥감을 찾듯 그를 찾아냈다. 그의 긴 청춘 시절은 사냥금지 기간조차 없이 늘 쫓기는 세월이었다. 고독한 이가 지쳐 떨어지지 않고 빠져나가면 사람들은 그가 남겨놓은 것에 대해 소리를 지르고, 추하가고 하고, 수상하다고 중상을 하였다. 그래도 고독한 이가 순순히 말을 듣지 않자 사람들은 좀더 노골적으로 나왔다. 사람들은 그의 음식을 빼앗아 먹고, 그가 마실 공기를 다 들이마시고, 그의 가난에 침을 뱉어서 그가 가난을 혐오하도록 만들려 했다. 전염병자에게 하듯 그에 대한 소문을 퍼뜨렸고, 더 빨리 쫓아내려고 돌을 던졌다. 사람들의 오래된 본능은 옳은 것이었다. 고독한 이는 정말로 그들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독한 이가 개의치 않자 사람들은 곰곰이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든 행위가 오히려 그의 의지를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 있는 것이 오히려 그를 더욱 강하게 해주고, 자신들에게서 영원히 멀어지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략을 바꾸어 마지막 수단, 극단적인 다른 저항의 수단을 사용했다. 그것은 명성이었다. 이 명성이라는 소음에는 거의 모두가 눈을 들어 바라보았고 결국 정신이 산란해졌다.

오늘 밤에는 내가 소년이었을 때 가지고 있었던 자그만 녹색 책이 생각났다. 그 책을 마틸데 브라에한테서 받은 것 같은데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다. 그 책을 받았을 때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몇 년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읽어보았다. 아마도 울스가르에서 보낸 방학 때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처음 보자마자 그 책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만 보아도 아주 훌륭한 장정이었다. 표지의 녹색은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듯했는데, 책 내용도 분명 그럴 것이라고 바로 알 수 있었다. 마치 그렇게 약속되어 있었던 것처럼 처음에 흰색으로 표백한 매끄러운 간지가 나왔고, 다음에는 비밀에 가득 차 보이는 제목이 씌어 있는 속표지가 나왔다. 삽화도 들어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도 없었다. 서운하긴 하지만, 그 사실도 당연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떤 페이지에서 가느다란 책갈피 끈을 발견하고는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책갈피 끈은 좀 낡았으며 비뚜름하게 끼어 있었는데, 아직도 분홍빛을 간직하고 있어서 감동적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계속 같은 페이지에 끼어 있었던 것 같다.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제본공이 제대로 보지도 않고 빠른 솜씨로 서둘러 끼워 넣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닐지도 몰랐다. 누군가가 거기에서 읽기를 멈추고, 그 후로 다시 읽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순간에 운명이 그의 문을 두드려서 일에 몰두하게 하고, 모든 책에서 멀어지게 했을 수도 있다. 책은 결국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페이지를 넘어서 그책이 더 읽혀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누군가가 밤늦게 책을 손에 잡아서는 언제나 이 페이지를 계속해서 펼치곤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떻든 나는 누군가가 서 있는 거울 앞에 다가갈 때처럼 이 페이지 앞에서 망설였다. 그 페이지를 나는 결코 읽지 않았다. 내가 책 전체를 다 읽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 책은 두껍지 않았지만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특히 오후에 그 책을 읽곤 했는데, 언제나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하나는 있었다.
아직까지 두 개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떤 이야기인지 말해 보겠다. 가짜 황제 그리샤 오트레피오프의 최후와 용맹한 샤를 대공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가 당시에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는지 어떤지는 지금으로서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가짜 황제의 시체가 군중 속으로 내던져져 발기발기 찢기고, 칼과 창에 찔리고, 얼굴에는 가면을 씌운 채로 3일 동안 방치된 장면을 묘사한 부분은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내가 그 작은 책을 다시 손에 넣을 전망은 물론 없다. 그러나 그 부분은 아주 인상깊었음에 틀림없다. 황제의 어머니와 가짜 황제의 첫 만남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다시 읽어보고 싶다. 황제의 어머니에게 모스크바로 오라고 했을 때에 그는 아주 안전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당시에 자신이 정말로 진짜라고 믿고 있었고, 그래서 그가 정말로 자신의 진짜 어머니를 불렀다고 생각했으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초라한 수도원에서 며칠 간의 여행 끝에 급하게 도착한 황제의 어머니 마리 나고이는 그를 긍정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다시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그를 아들이라 인정하면서부터 그의 흔들림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그의 변신의 힘은 바로 그가 어느 누구의 아들도 아니라는 데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또한 집을 떠난 모든 젊은이들의 힘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고 그를 왕으로 추대했던 민중은 그의 가능성을 좀더 자유롭고 무한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반면에 황제의 어머니가 그를 아들로 인정한 이 의식적인 기만은 그를 약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는 상상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그를 끄집어내어 피곤한 모방의 세계에 묶어버렸다. 어머니는 그를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이로 격하시켜 사기꾼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마리나 므니체크가 가담하여 그를 서서히 붕괴시켰다. 나중에 밝혀진 것처럼 그녀는 그를 믿은 것이 아니라, 누구든 상관없이 그냥 믿었던 것이었으므로, 결국은 자신의 방식으로 그를 부인한 것이다. 그 이야기 속에 이 모든 측면이 얼마나 많이 고려되었는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떻든 모든 것이 서술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이 사건은 전혀 진부하지 않다. 이제 마지막 순간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작가도 있을지 모른다. 그가 잘 생각한 것일 게다. 마지막 순간에 많은 일이 일어난다. 가짜 황제가 깊은 잠에서 깨어 창가로 다가가, 창문 넘어 궁정 마당의 위병들 사이로 뛰어내린다. 그는 혼자 일어날 수가 없다. 위병들이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 아마도 다리가 부러진 것 같다. 두 명의 위병에 기대어 그는 그들이 아직 자신을 믿고 있다고 느낀다. 그는 주위를 둘러본다. 다른 위병들도 그를 믿고 있다. 이 덩치 큰 위병들이 그에게는 불쌍하게까지 여겨진다. 이 정도로까지 일이 진척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이반 그로스니의 실제 모습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는데도 그를 믿는 것이다. 그들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가 입을 벌리자 고통의 비명소리가 나왔다. 다리의 통증이 너무도 심하다. 이 순간 그는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기에 통증 말고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없다. 사람들이 밀려온다. 슈이스키와 그 뒤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보인다. 이제 곧 끝장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위병들이 그를 둘러싼다. 그를 넘겨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난다. 이 고참 위병들의 믿음은 곧 퍼져나가 슈이스키 일행 중 아무도 더 이상 앞으로 나서려 하지 않는다. 그의 가까이에 와 있던 슈이스키가 필사적으로 창문에 대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돌아다보지 않는다. 창가에 누가 서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곧 조용해지리라는 것을,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지리라는 것을 예감한다. 첫 만남 이후로 귀에 익숙해진 목소리, 과도하게 힘을 주어 꾸민 높은 목소리가 울릴 것이다. 그때 그는 황제의 어머니가 자신을 부인하는 소리를 듣는다.
여기까지 이 사건은 혼자서 흘러간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서술자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아직 남아 있는 몇 줄의 문장에서는 어떤 반대도 뛰어넘을 강력한 힘이 솟아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목소리와 권총소리 사이의 지극히 짧은 순간에, 극도로 압축되어서 모든 것이 되려는 의지와 힘이 다시 한 번 그의 마음속에서 되살아났다는 사실은 그것의 표현 여부와 상관없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마치 한 인간의 강인함을 찔러보려는 듯이, 그의 잠옷을 꿰뚫고 몸 여기저기를 쑤셔 댄 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가 이미 거의 포기한 가면을 죽어서도 3일 동안이나 쓰고 있었던 사실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바로 그 책에 마치 단단한 화강암처럼 일생 동안 변하지 않고 한결 같은 사람으로 머물러 있었으며, 그를 받들던 사람들에게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던 샤를 대공의 최후가 함께 실려 있던 사실이 이상하게 여겨진다. 디종에는 그의 초상화가 하나 있다. 초상화만 봐도 그가 성급하고, 심술궂고, 고집이 세며, 필사적이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마도 손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손은 몹시도 뜨거웠으며 늘 식혀주기를 바랐다. 저도 모르는 새에 차가운 것 위에 올려놓아야 했으며, 손가락을 쫙 펴서 그 사이로 공기를 통하게 해야 했다. 그 손으로는 피가 머리로 몰리는 것처럼 쏟아져 들어갔고, 그 안에서는 미친 사람의 머리에서처럼 생각이 날뛰고 있어서 두 주먹을 꼭 쥐어야 했다.
이러한 피를 지니고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조심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샤를 대공은 늘 자신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때때로 이 피가 몸 속을 은밀하고 어둡게 돌아다닐 때면 그는 두려움에 떨었다. 포르투갈인의 피가 반쯤 섞인 자신의 날쌘 피를 그는 거의 알지 못했다. 그 피는 그 자신에게 오싹할 정도로 낯설었다. 종종 그는 잠든 동안 이 피가 자기를 습격해서 갈기갈기 찢어버릴까봐 불안해했다. 그는 피를 길들여서 제어한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은 언제나 공포에 떨고 있었다. 자신의 피가 질투할 것이 두려워서 그는 한 번도 감히 여자를 사랑하지 못했다. 피가 너무도 격렬해서 술도 입에 대지 못했다. 술을 마시는 대신 그는 장미 잼으로 피를 달랬다. 그러나 그랑송이 함락되었을 때, 그는 로잔의 진영 막사에서 딱 한 번 술을 마셨다. 그때 그는 상심하여, 홀로 앉아 독한 포도주를 많이 마셨다. 그러나 당시 그의 피는 잠들어 있었다. 무의미했던 만년의 몇 해 동안 그의 피는 종종 동물 같은 무거운 잠에 빠져들고는 했다. 그러면 그가 얼마나 자신의 피에게 지배당하고 있었는지 명백해졌다. 피가 잠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위의 그 누구도 방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는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황폐해져서 외국 사신에게도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피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대개 피는 갑작스레 뛰어 일어나, 심장으로부터 솟구쳐 나오며 포효했다.
이 피를 위해서 샤를 대공은 자신에게는 쓸모 없는 많은 것들을 끌고 다녔다. 세 개의 커다란 다이아몬드와 온갖 보석들, 플랑드르산 레이스와 마라스의 양탄자 등을 잔뜩 끌고 다녔다. 금실을 꼬아 만든 끈으로 장식한 비단 천막과 자신의 시종을 위한 400개의 천막, 목판에 그린 그림들, 순은으로 만든 12사도상을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타렌트 왕자, 클레베 공작, 바덴의 필립공, 샤토 기용의 영주를 데리고 다녔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피에게 자기가 황제이며 자기 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설득시켜, 자기를 두려워하도록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의 피는 그를 믿지 않았다. 그의 피는 불신에 가득 차 있었다. 어쩌면 그는 잠시 동안은 그의 피를 반신반의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스위스군의 승리가 그를 배신했다. 그 후로 그의 피는 자신이 패배자의 몸 속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밖으로 뛰쳐나오려 했다.
지금 나는 그의 이야기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그를 찾아다닌 공현절에 대한 묘사가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다.
공현절 전날, 이상하게도 바로 끝나버린 전투를 마치고 비참하게 변한 자신의 도시 낭시에입성한 로트링겐의 젊은 영주가 다음날 새벽 일찍 측근들을 깨워 대공의 소식을 물었다. 게속해서 전령을 내보내고 그 자신도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때때로 창가에 모습을 들어냈다. 마차나 들것에 실려온 사람들 모두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다만 대공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부상자들 속에도 대공은 없었다. 계속해서 끌려오는 포로들 중에서도 대공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피난민들은 그러나 사방에다 온갖 소문을 퍼뜨렸다. 그들은 대공과 마주칠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듯 당황하고 겁먹은 모습이었다.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대공의 행방에 대해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대공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긴 겨울밤 내내 퍼져나갔다. 그 소식은 그러나 가는 곳마다 대공이 살아 있으리라는 끈질기고 과장된 확신을 모든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다. 아마도 그날 밤처럼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대공이 그렇게 생생하게 자리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모든 집마다 깨어 일어나 대공을 기다렸으며, 대공이 문을 두드릴지 모른다고 상상했다. 그러다가 대공이 오지 않으면 이미 자신의 집을 지나쳐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에는 얼음이 얼었다. 대공이 살아 있다는 생각도 얼어버린 듯했다. 그 생각은 아주 단단히 얼어붙어서 녹을 때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 같았다. 모두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공이 살아 있다고 주장했다. 대공이 그들에게 가져다준 운명은 오로지 대공의 모습이 보여야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대공의 존재를 그들은 그토록 힘들게 익혀야 했지만 대공을 잊을 수 있는 지금에 와서는 모두에게 뚜렷이 생각나고, 잊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1월 7일 화요일에 수색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안내자가 있었다. 대공의 시중을 들던 소년이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대공이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멀리서 보앗다고 했다. 그래서 그 자리를 가르쳐 주기로 한 것이다. 소년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캄포바소 백작이 소년을 데려와서 대신 이야기를 했다. 이제 소년이 앞장을 섰고 다른 사람들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변장을 하고 아주 불안해 하는 소년을 본 사람은 이 사람이 정말로 소녀처럼 아름답고 뼈마디가 가느다란 장바티스타 코로나인지 믿기 어려워했다. 소년은 추워서 덜덜 떨고 있었다. 밤에 내린 서리로 인해 대기는 뻣뻣해져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를 가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도 모두 꽁꽁 얼었다. 루이 옹스라 불리는 대공의 어릿광대만이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는 개 흉내를 내며 앞으로 달려갔다가 되돌아와서는 잠시 동안 네 발로 소년의 옆을 뛰어다녔다. 그러다 멀리 시체가 보이면 어릿광대는 달려가서 몸을 굽혀 인사를 하고, 시체에게 정신을 좀 차리고 사람들이 찾는 그 사람이 되어달라고 설득하는 것이었다. 그는 시체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고는 투덜거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되돌아와서는 으르렁대고 저주하면서, 죽은 사람들의 고집과 게으름을 불평했다. 사람들은 계속 전진했지만, 결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도시는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추웠음에도 어느새 하늘이 닫혀서 희뿌예지고, 시야가 흐려졌기 때문이었다. 대지는 드넓고 무관심하게 펼쳐 있었다. 이 작고 촘촘한 사람들의 무리는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더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았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함께 따라온 노파만이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아마도 기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앞서가던 소년이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대공의 주치의인 포르투갈 사람 루피 쪽으로 몸을 돌리고 앞을 가리켰다. 몇 걸음 앞에 웅덩이인지 연못인지가 얼어붙은 것 같은 얼음판이 있었다. 열 내지 열두 구의 시체가 그 속에 반쯤 잠긴 채로 널부러져 있었다. 거의 모두가 옷이 벗겨지고 약탈당한 모습이었다. 루피가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며 시체를 하나하나 자세히 설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씩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목사와 올리비에 드 마르슈를 찾아냈다. 노파는 그러나 이미 눈 속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어느 한 시체의 커다란 손 위로 몸을 굽히고 있었다. 그 손의 활짝 벌린 손가락이 노파를 응시하는 듯했다. 모두들 서둘러 그리로 갔다. 주치의인 루피가 시종들과 함께 엎드려 있는 시체를 바로 눕히려고 했지만 얼굴이 바닥에 얼어붙어 있었다. 억지로 얼음에서 잡아떼자 한쪽 뺨이 얇고 거칠게 벗겨졌다. 다른 쪽 뺨은 개나 늑대한테 물어뜯겨 있었다. 그리고 얼굴 전체에 귀에서부터 커다란 상처가 가로지르고 있어서 사람의 얼굴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한 사람씩 뒤를 돌아다보았다. 어쩐지 대공이 뒤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모두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피 묻은 손으로 화가 나서 달려오는 어릿광대만이 보였다. 그는 외투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무엇인가 털어내려는 듯 그것을 흔들었다. 그러나 외투는 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그 시체에서 대공의 특징을 찾기 시작했다. 몇 개가 발견되었다. 불을 피우고 물과 포도주를 데워 그것으로 시체를 씻었다. 목에서 흉터가 나타났고, 커다란 종기 자국 두 개도 찾아냈다. 의사는 이제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밖의 다른 특징도 비교해 보았다. 어릿광대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커다란 흑마 모로의 시체를 찾아냈다. 낭시의 전투가 있던 날 대공이 탄 말이었다. 대공은 이 말 위에 앉아 짧은 다리를 늘어뜨렸었다. 말의 코에서 흘러나온 피가 아직도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피를 맛있게 마시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쪽에 있던 시종이 대공의 왼발 발톱 하나가 살 속으로 파고들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이제 모두가 그 발톱을 찾았다. 그러나 어릿광대는 누가 간질이기라도 하는 듯이 몸을 뒤틀며 소리쳤다. “아아, 전하, 전하의 조야한 결점을 찾고 있는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전하의 은덕이 서려 있는 저의 이 슬픈 얼굴을 보고도 전하를 알아보지 못하는 저 어리석은 자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대공의 주검이 안치되었을 때 제일 처음 들어간 사람도 어릿광대였다. 게오르그 마르키 라는 사람의집에 안치되었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관은 아직 천으로 덮여 있지 않아서 어릿광대는 전체 인상을 볼 수가 있었다. 침대 차양과 바닥의 검정색 사이에서 저고리의 흰색과 외투의 진홍색이 서로 퉁명스럽게 등을 돌리고 확연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앞쪽으로는 커다란 금빛 박차가 달린 주홍색 장화가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저쪽 위로는 머리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떻든 왕관이 보였기 때문이다. 보석으로 장식한 커다란 왕관이었다. 어릿광대는 주위를 돌며 이 모든 것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공단이 어떤가 만져보기까지 했다. 좋은 공단인 것 같았다. 그러나 부르고뉴 왕가의 격에 비해서는 약간 싸구려일지도 몰랐다. 전체를 살피려고 그는 다시 한 번 뒤로 물러났다. 하얗게 빛나는 눈[雪]의 반사광 속에서 모든 색들이 기이하게 서로 독립되어 있었다. 그는 모든 색들을 하나하나 가슴에 새겼다. “훌륭한 차림이군.” 마침내 그는 인정했다. “약간 너무 선명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죽음이 마치 꼭두각시 인형 조종자처럼 여겨졌다. 그 꼭두각시 인형 조종자에게 갑자기 대공 인형이 필요해진 것이다.)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그 사실을 후회한다거나 비판하지 말고 단순히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 그런 점에서 나는 결코 올바른 독서가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어린 시절에 나는 독서란 나중에 우리에게 여러 가지 소명이 주어질 때, 그때 우리가 떠맡아야 할 미래의 일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게 언제일지는 확실하게 알지 못했다. 예전에는 오로지 우리의 내면에서만 솟구쳐 나오던 삶이 바뀌어서, 다만 외부에서만 다가오게 되면 그 시기를 알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확실해져서 결코 오해하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것이 전혀 간단하지 않고, 그 대로 아주 까다롭고 복잡하여 내게는 힘들겠지만 어떻든 명백하기는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어린 시절의 이상한 막막함과 균형이 안 맞는 듯한 느낌, 그리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만 같은 느낌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근본적으로 그런 느낌들은 오히려 점점 커져서 사방을 막아버렸다. 그래서 밖을 내다보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의 내면만을 점점 더 뒤흔들어놓는 꼴이 되었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마도 그런 느낌은 거의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른들은 돌아다니면서 이렇다 저렇다 판정을 하고 행동을 했다. 어른들이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있었지만, 모두 외부의 상황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변화가 시작될 때까지 나는 독서를 미루어놓았다. 그때가 되면 아는 사람들과 사귀듯 책과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하고 규칙적이며, 기분 좋게 흘러가는 독서의 시간을 내게 적당한 만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떤 책이 특별히 더 마음에 들어서 그 책을 읽느라 때로는 산책이나 약속, 연극 개막 시간을 놓치거나 급한 편지를 쓰는 것을 30분씩 지체하는 일이 전혀 없으리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한쪽으로 잠을 잔 듯 머리가 눌리고 흐트러지거나, 귓불이 달아오른다거나, 손이 쇠처럼 차가워지거나, 옆에 있던 초가 촛대 바닥에까지 타들어가 있는 일은 다행히도 결코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울스가르에서 방학을 보내면서 갑작스럽게 독서에 빠져들었을 때 그것을 꽤 인상 깊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독서를 제대로 잘 할 수 없음이 곧 드러났다. 나는 예정되어 있는 시간보다 일찍 독서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해에 소뢰에서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있었던 일이 그러한 시간 계산을 미심쩍게 만들어 버렸다. 거기에서는 예기치 못했던 경험들이 성급하게 내게 다가왔다. 그 경험들이 나를 어른 취급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경험들로서 너무도 무거웠다. 그러나 내가 그 경험의 실재를 느끼는 정도로 나의 어린 시절의 영원함에도 또한 눈을 뜨게 되었다. 나는 어린아이로서의 나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내게는 아직 어른의 세계가 시작되지도 않았다. 인생의 단락을 나누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지만, 모두 상상으로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런 단락을 생각해내기에는 내가 너무 서투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시도할 때마다 삶에는 그러한 구분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나의 어린 시절이 이미 지나가버렸다고 주장할 때면, 그 순간 다가오던 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내게는 납으로 만든 장난감 병정이 서 있는 데 필요한 정도의 작은 공간만이 남았다.
이러한 발견이 당연히 나를 다른 아이들로부터 더욱 고립시켰다. 나는 이러한 생각에 몰두했고, 그것으로 인해 일종의 궁극적인 기쁨을 가슴 가득 느꼈다. 그 기쁨은 내 나이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어서 내게는 오히려 걱정으로 여겨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나는 당분간 아무런 계획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놓칠 것만 같아서 불안해했다. 그러다가 울스가르에 돌아와서 그 모든 책들을 보았을 때 책에 열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아주 조급하게 그리고 거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책을 읽었다. 나중에 자주 느끼곤 한 일이지만, 당시에 나는 모든 책을 읽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면 한 권의 책도 펼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막연히 예감했다. 한 줄을 읽을 때마다 세계가 무너졌다. 책을 읽기 전에 온전했던 세계는 아마도 책을 다 읽은 다음에야 다시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그런데 제대로 독서할 줄 모르던 내가 어떻게 그 모든 책들과 대적할 수 있었겠는가? 이 소박한 서재에도 가망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이 모여 있었다. 나는 반항하듯 필사적으로 이 책 저 책으로 덤벼들었고, 무엇인가 과도한 일을 해내야 하는 사람처럼 페이지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 그 당시 나는 실러와 바게센과 왈렌슐레거와 샤크 스타펠트를 읽었고 서재에 있던 월터 스콧과 칼데론 데 라바르카를 읽었다. 내가 손에 잡은 책들 중의 몇몇은 이미 읽었어야 했을 것이었지만, 어떤 책들은 내가 읽기에는 너무 일렀고 당시의 나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읽었다.
몇 년이 지난 후 한밤에 때때로 잠에서 깨어나곤 했는데, 그럴 때면 별들은 초롱초롱 빛나며 의미심장한 운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세상을 놓치며 살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책에서 눈을 들어 여름이 한창이 바깥을 내다볼 때에도, 아벨로네가 나를 부르고 있는 곳을 바라볼 때에도 이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생각이 난다. 그러다가 돌연히, 아벨로네가 계속 나를 불러도 한 번도 대답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그렇게 되었다. 나는 독서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안간힘을 다해 책에 매달렸고, 우리들의 매일 매일의 휴일에서 도망쳐서 거만하고 완고하게 몸을 숨겼다. 자연스러운 행운을 잡을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눈에 띄지 않는 그러한 기회를 활용하기에는 나는 너무도 서툴렀다. 우리 사이에는 점점 불화가 심해졌는데, 그 불화에서 나는 미래에 이루어질 화해를 기대하며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화해를 뒤로 미루면 미룰수록 그것은 더욱 매력적이 되어갔다.
그런데 나의 독서열은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식어버렸다. 그러자 우리는 서로에게 굉장히 화를 냈다. 아벨로네가 나를 비웃으며 우월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정자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녀는 책을 읽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엔가는 실제로 책이 덮여진 채 그녀 옆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아벨로네는 요한니스 딸기에 더 열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포크로 조심스럽게 작은 송이에서 열매를 하나하나 따고 있었다.
7월의 흔한 어느 날 아침이었을 것이다. 푹 자고 난 뒤에 맞는, 무언가 예상치 못한 기쁜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새로운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에는 억제할 수 없는 수백만 개의 작은 움직임이 모여 확실한 존재의 모자이크를 만든다. 사물들은 대기 속에서 이리저리 나부낀다. 대기의 서늘함이 그늘을 선명하게 만들어주고, 태양을 경쾌하고 정신적인 빛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러면 정원에는 주인공이란 없다. 모두가 도처에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사물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아벨로네의 작은 손놀림 속에는 그 모든 것이 다시 한 번 들어 있었다. 그녀가 손놀림을 하는 동작이나 모습이 모두 아주 행복해 보였다. 그늘 속에서 밝게 빛나는 그녀의 손이 아주 경쾌하고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포크 앞쪽으로 둥그런 열매가 툭 튀어나와 이슬 젖은 포도잎이 깔린 접시로 굴러 들어갔다. 접시에는 쌉쌀한 속살 속에 건강한 씨를 품고 있는 빨갛고 노란 열매들이 반짝반짝 빛나며 쌓여 있었다. 나는 그냥 아벨로네를 바라보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나무랄까봐 짐짓 모르는 척하면서, 거기 놓인 책을 들고 탁자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오래 뒤적이지 않고 아무 데나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읽어보는 게 어때, 책벌레 씨.” 잠시 후에 아벨로네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이미 싸움을 거는 말투가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그녀와 화해할 때라고 생각했기에 곧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한 단락을 다 읽고 다음 제목을 읽었다. “베티네에게.”
“아니, 답장은 읽지 마.” 아벨로네는 내가 읽는 것을 중단시키고는 갑자기 지친 듯 작은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내 얼굴 표정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왜 그렇게 형편없이 읽는 거야, 말테.”
한 순간도 집중해서 읽지 않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중단시키게 만들려고 읽었을 뿐이야.”라고 나는 고백하고 얼굴이 빨개져서 책 제목을 보려고 책장을 앞으로 넘겼다. 어떤 책인지 이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답장을 읽기 말라는 거지?” 나는 호기심에 차서 물어보았다.
아벨로네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은 듯했다. 그녀는 환한 옷 속에 잠겨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눈이 어두워지는 것처럼 내면 또한 온통 어두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리 줘.” 그녀는 갑자기 화난 목소리로 말하고 내 손에서 책을 뺏어서는, 그녀가 원하는 곳을 바로 펼쳤다. 그리고는 베티네의 편지 하나를 읽기 시작했다.
내가 그것을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언젠가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진지하게 약속했던 것 같다.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서 마침내 노래하는 것처럼 되어가는 동안, 나는 우리의 화해를 그처럼 사소하게 생각했던 것을 부끄러워했다. 바로 이것이 화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화해는 위쪽 멀리, 내 손이 닿지 않는 아주 커다란 세계에서 이루어졌다.

약속은 아직도 실현된다. 언젠가부터 그 책은 내가 늘 지니고 있는 몇 권의 책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 나도 원하는 부분을 바로 펼칠 수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베티네를 생각하는지 아벨로네를 생각하는지 분간이 잘 안 된다. 아니, 내 마음 속에는 베티네가 더 생생해졌다. 내가 알고 있던 아벨로네는 실은 베티네를 위한 준비와 같았다. 이제 아벨로네는 내 안에서 자기도 모르는 본연의 존재로 돌아가듯 베티네와 합쳐졌다. 왜냐하면 이 놀라운 베티네는 그녀의 모든 편지를 통해 공간을 열어제껴 가장 커다란 모습으로 자라났기 때문이다. 마치 죽은 다음의 모습처럼 베티네는 처음부터 모든 것 속에 널리 퍼져 들어갔다. 그녀는 어디서나 존재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갔고, 그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일어난 일은 자연 속에 영원히 자리를 잡았다. 자연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알아보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켰다. 그리고는 전설 속에서라도 찾아내듯 힘들게 자신을 되찾아내고, 유령을 불러내듯 자신을 불러내어 존재하게 된 것이다.
베티네, 그대는 바로 전까지도 여기 있었다. 나는 그대를 아직 느끼고 있다. 대지는 그대로 인해서 아직 따뜻하고, 새들도 그대의 목소리를 위해 빈자리를 남겨놓고 있지 않는가. 이슬은 그대의 이슬이 아니라 하더라도, 별들은 그대의 밤에 빛나던 바로 그 별들이다. 아니, 이 세계가 전부 그대의 것이 아닌가? 얼마나 자주 그대는 그대의 사랑으로 세계를 불질러서, 세계가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았는가. 그런 다음 그대는 모두가 잠든 사이 몰래 세계를 다른 세계로 바꿔놓지 않았던가. 신이 창조한 모든 세계가 골고루 등장할 수 있도록 그대가 매일 아침 신에게 새로운 세계를 요구할 때면, 그대는 정말 신과 하나가 되었음을 느꼈을 것이다. 낡은 세계를 아끼고 수선하는 것을 그대는 궁색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세계를 아낌없이 써버리고는 계속 새로운 세계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대의 사랑이 모든 것에 필적할 만하게 커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직도 그대의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가? 그 후로 그대의 사랑보다 더 놀라운 일이라도 일어났단 말인가?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일에 매달려 있는 것인가? 그대는 스스로 자신의 사랑의 가치를 알았다. 그래서 그것을 인간적인 사랑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자신의 사랑을 가장 위대한 시인에게 털어놓았다. 왜냐하면 그대의 사랑은 아직 자연의 원소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인이 그만 그대에게 답장을 보내면서 그대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말해 버리고 말았다. 모두들 그 답장을 읽었다. 이제 사람들은 시인의 말을 더 믿는다. 그들에게는 자연보다는 시인이 더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바로 여기에 그 위대한 시인의 한계가 있었음이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이 사랑하는 여인은 시인에게 부과된 과제였는데, 시인은 그 과제를 떠맡지 않았다. 그가 사랑에 응할 수 없었다니 무슨 말인가? 그러한 사랑은 어떠한 응답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랑은 부르는 소리와 대답하는 소리를 자신 안에 함께 지니고 있다. 그 사랑은 스스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지만 시인은 화려한 정장을 갖추고 그 사랑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파트모스 섬의 요한처럼 무릎을 꿇고 사랑이 불러주는 말을 두 손으로 받아 적어야 했을 것이다. ‘천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이러한 목소리 앞에서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그 목소리는 시인을 옹위하여 영원 속으로 데려가기 위해 울린 소리였다. 거기에는 시인이 불길에 휩싸여 승천할 수 있도록 불타는 마차가 대령해 있었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헛되게 만들었다.

운명은 여러 무늬와 모습을 생각해 내기를 좋아한다. 너무 복잡하게 만드는 데 운명의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삶 자체는 단순하기에 오히려 힘들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에게 맞지 않을 정도의 크기를 가진 것은 별로 없다. 성자는 신을 마주하고 운명을 거부하면서 어려운 길을 선택한다. 여인들도 천성적으로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성자와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랑의 관계에서 불행이 생겨난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남자 곁에서 여인은 마치 영원한 존재처럼 운명에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서 있다. 삶이 운명보다 위대하기에 사랑하는 여인은 언제나 사랑받는 남자를 능가한다. 여인들이 베푸는 사랑의 헌신은 무한하다. 사랑의 헌신이 바로 여인들의 행복이다. 그래서 사랑의 헌신을 제한하라는 요구는 여인들의 사랑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준다.
여인들이 한탄한 것은 오로지 이러한 사랑의 고통이었다. 엘로이즈의 최초의 두 편지는 모두 이러한 한탄을 가득 담고 있다. 그리고 이 한탄은 500년 후의 포르투갈 여인의 편지에도 다시 나온다. 마치 새들의 울음처럼 그 한탄의 소리를 알아볼 수가 있다. 그리고 불현듯, 이러한 통찰에 힘입어 환해진 공간을 뚫고, 사포의 모습이 아련하게 지나간다.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운명 속에서 찾았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한 사포의 모습이 지나간다.

나는 한 번도 그 사람한테서 신문을 살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 사람이 저녁 내내 뤽상부르 공원 바깥을 왔다갔다할 때면 그가 정말 신문을 몇 부라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기조차 하다. 그는 공원 담장에다 등을 대고, 창살이 박혀 있는 돌들의 모서리를 손으로 더듬으며 움직인다. 그 사람은 돌담에 아주 바짝 붙어 있어서 매일 지나가면서도 그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아직 남아 있는 목소리로 신문을 사라고 외쳐 보지만, 그것은 등불이 타오르는 소리, 난로에서 나는 지지직 소리 또는 동굴 속에서 물방울이 독특한 간격을 두고 떨어지는 소리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세상이란 언제나 그가 외치는 것을 잠시 쉬고, 움직이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조용하게 마치 시계바늘처럼, 시계바늘의 그림자처럼, 시간 그 자체처럼 이동하는 그 순간에만 사람들이 지나가도록 되어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쓴 것은 얼마나 부당한 일이었던가. 종종 그 사람 옆을 지나갈 때면 나는 그를 전혀 모른다는 듯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을 뒤쫓곤 했다는 것을 말하자니 부끄럽다. 그럴 때면 그가 “신문이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 번 그리고 짧은 간격을 두고 세 번째로 그 소리가 들렸다. 내 옆의 사람들은 두리번거리며 그 목소리의 행방을 찾았다. 그러나 나 혼자만 아무것도 듣지 못했으며, 다른 생각에 잠겨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남들보다 서둘러 지나갔던 것이다.
사실 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을지 머리 속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상상하느라 애를 써서 진땀이 났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증거물도, 몸체의 어떤 부분도 남아 있지 않은 죽은 사람을 그릴 때처럼 그 사람의 모습을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머리 속에서 그려내야 했다. 고물상마다 쌓여 있기 마련인, 줄무늬 상아로 만든 야윈 예수 상을 생각하니 조금 도움이 되었던 것이 생각난다. 어떤 피에타 상에 대한 기억이 언뜻 스쳐갔다. 이 모든 것은 아마도 그 사람의 긴 얼굴이 지닌 어떤 성향과 그의 뺨을 덮은 절망적인 덥수룩한 수염과 비스듬히 위를 향하고 있는 수줍은 표정에 들어 있는 고통스러운 장님의 모습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외에도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특징을 많이 생각해낼 수 있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저고리인지 외투인지의 뒤쪽 단이 삐져나와 있고 칼라는 다 드러나 있으며, 그 낮은 칼라가 움푹 패인 기다란 목 주위를 허전하게 감싸고 있는 모습도 중요했다. 그 칼라 주위로 짙은 녹색 넥타이가 헐렁하게 매어져 있는 모습, 특히 커다랗고 뻣뻣한 낡은 털모자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모든 장님들처럼 이런 모자를 쓰고 있을 것이었다. 그것은 얼굴의 특징과도 관계가 없고, 모자와 얼굴 사이에 새로운 외적인 조화를 이룰 일도 없이, 다만 관습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낯선 물건과 같으리라고 나는 상상했다. 그 사람을 쳐다볼 용기가 없었기에 그 남자의 모습은 마침내 내 안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강렬하고 고통스럽게 뭉쳐져서 종종 이처럼 아주 비참한 모습이 될 정도가 되었다. 그러한 모습에 가슴이 답답해진 나는 그의 실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점점 능수능란해지는 나의 상상을 약화시키고 중지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그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지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봄이 오고 있던 때라는 것을 말해야겠다. 낮에 불던 바람은 잦아들었고, 텅 빈 골목은 길고 평온해 보였다. 골목이 끝나는 곳에서 집들은 막 자른 흰색 금속의 단면처럼 어슴푸레 빛나고 있었다. 너무 가벼워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그런 금속 같았다. 앞으로 쭉 뻗은 넓은 거리에 계속 많은 사람들이 서로 엉키며 지나갔다. 가끔씩 지나가는 마차를 사람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요일이 틀림없었다. 생 쉴피스 성당의 탑머리가 바람 멎은 고요 속에서 밝게, 그리고 생각보다 높게 솟아 있었다. 로마 풍의 좁다란 골목 너머로 계절이 건너다 보였다. 공원 앞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서 그를 바로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면 사람들 틈으로 보이는 그를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를 보자마자 나의 상상이 무가치했음을 곧바로 깨달았다. 특별히 조심하거나 숨기는 것 없이 비참함에 온 몸을 맡긴 그의 모습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가 이런 각도로 기울어져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그의 눈꺼풀 안쪽에서 끊임없이 넘쳐나는 듯한 공포도 알지 못했다. 배수구처럼 움푹 들어간 그의 입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아마 그에게도 추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날마다 손으로 더듬는 형체 없는 돌담의 느낌말고는 아무것도 그의 영혼에 추가되지 않았다. 나는 멈춰 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동시에 바라보는 동안, 그가 나의 상상과는 다른 모자를 쓰고, 나들이용에 틀림없는 넥타이를 매고 있음을 알았다. 넥타이에는 노랑과 보라색 사각 무늬가 비스듬히 찍혀 있었다. 새것으로 보이는 맥고모자는 녹색 띠를 두른 싸구려였다. 물론 색깔은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내가 그 색깔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좀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의 모습에서 색깔만큼은 새 앞가슴의 가장 부드러운 털과 같았음을 말해두고 싶다. 그 사람도 색깔에 대해 아무런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사람들 중에서 대체 누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러한 복장이 그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할까?
아아 신이여, 당신이 이렇게 존재하신다는 생각이 격렬하게 나를 덮쳤다. 당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여러 증거가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고, 누구에게도 그 증거를 요구하지 않았다. 당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 속에는 엄청난 의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내게 그 장님의 모습을 통해 증거가 제시되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취향이다. 그의 모습에서 당신은 흐뭇함을 느낀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참고 견뎌내며 이렇다 저렇다 속단하지 않아야 함을 배웠다. 무엇이 힘든 일인가? 무엇이 자비로운 일인가? 당신만이 그것을 아신다.
겨울이 다시 오면 새 외투가 필요하리라-그러면 신이여, 그 외투가 새것인 동안 그 사람처럼 그렇게 입게 해 주소서.

내가 처음부터 내 소유였던 좀더 좋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고, 일정한 거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들만한 존재가 못 된다. 그들의 삶을 견뎌낼 용기가 내게는 없다. 만일 내가 팔을 못 쓰게 된다면 나는 그것을 감출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는 (그 여자가 누구였는지 나는 모른다) 매일 카페의 테라스 앞에 나타났다. 외투를 벗고, 무언가 이상한 옷과 속옷을 벗는 일이 매우 어려워보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어려움을 마다 않고 아주 오랫동안 하나하나 벗었다. 기다리기 힘들 정도로 천천히 벗었다. 그 다음에 그 여자는 바짝 마른 불구의 팔을 드러내고 우리 앞에 얌전하게 서는 것이었다. 그 팔이 얼마나 진기한지 모두들 볼 수 있었다.
아니다, 나는 결코 그들과 나를 구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감히 그들과 같은 존재이기를 바란다면 불손한 일이다. 나는 그들과 같지가 않다. 나는 그들의 강함도 그들의 자제력고 지니고 있지 않다. 나는 매 끼니를 거르지 않고 먹으며, 아무런 비밀도 없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영원한 존재처럼 지탱해 나간다. 그들은 11월에도 날마다 같은 거리 모퉁이에 서 있다. 겨울이 와도 소리 지르지 않는다. 안개가 내려와 그들의 모습을 희미하고 불확실하게 만들어도 그들은 요지부동이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병을 앓기도 했다. 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났다. 하지만 그들은 죽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살아 있는 것이다.
(암울한 냄새를 풍기는 추위로 가득 찬 방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나는 정말 알 수가 없다. 정신없이 허둥대는 해골 같은 이 아이들에게 누가 힘을 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도대체 누가 힘을 주기에 어른들의 도시로, 밤이 끝나가는 어슴푸레 속으로, 영원히 계속되는 학교 수업 속으로, 여전히 어린 모습으로 언제나 예감에 가득 차서 그리고 언제나 지각을 하며 달려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듯 끊임없이 소모되는 도움의 힘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지 상상할 수가 없다.)
이 도시는 그런 사람들의 상태로 서서히 미끄러져 내려가는 이들로 가득 차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저항을 한다. 그러나 아무런 저항도 없이 곧바로 그들의 상태로 넘어가는 이들도 있다. 나이 들어가는 창백한 처녀들이 그렇다. 그들은 한 번도 사랑을 받은 일이 없는, 강하고 마음속 깊이 순결한 이들이다.
아아, 신은 아마도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처녀들을 사랑하기를 바라시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나를 앞질러갈 때면 따라가지 않으려고 내가 왜 이렇게 애를 써야 하겠는가? 무엇 때문에 갑자기 아주 달콤하고 자연스러운 말이 떠오르고, 내 목소리는 목구멍과 심장 사이에 부드럽게 걸려 있겠는가? 나는 왜 인생에 희롱당한 이 인형 같은 여인들에게 말할 수 없이 조심스럽게 입김을 불어넣어줄 생각을 하는 것일까? 봄이 오고 또 올 때마다 인생은 쓸데없는 희망을 불어넣으며 이 인형들의 팔을 자꾸만 넓게 잡아 벌려서, 결국 어깻죽지가 축 늘어져 버렸다. 이 여인들은 높은 희망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었기에 결코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너덜너덜해져서 이제 인생에게서도 버림받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단지 길 잃은 고양이들만이 저녁이면 그들의 방으로 들어와 그들을 몰래 할퀴고, 그들 위에서 잠을 잔다. 가끔 나는 그런 처녀를 두 골목쯤 뒤따라간다. 그들은 집 벽에 바짝 붙어서 걸어가는데, 계속해서 다가오는 사람들이 가리는 바람에 안 보일 때가 있다. 그러면 사람들 뒤에서 마치 빈 공간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렇지만 이제 누군가 그들을 사랑하려 한다면, 그들은 너무 많이 걸어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된 사람처럼 그에게 무겁게 기댈 것이다. 아마도 온 마디마디에 아직 부활의 힘을 지닌 예수만이 그 처녀들을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불 꺼진 등불 같은 작은 재주로 사랑받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는 여인이 아니라 오로지 사랑을 베푸는 여인만이 예수를 유혹할 수 있다.

내 운명이 극도로 비참한 것으로 정해져 있다면 좀더 좋은 옷으로 가장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그 왕은 왕국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비참한 이들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는 위로 올라가는 대신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궁전의 정원이 지금은 그들의 존재를 전혀 증명해주지 않지만, 내가 가끔 다른 왕들을 믿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밤이고 겨울이다. 나는 추위에 떨며 그를 믿고 있다. 왜냐하면 영광은 한 순간이고 비참함보다 더 오래가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왕은 영원할 것이다.
그는 유리종 속의 밀랍 꽃처럼 광기 속에서 자신을 보존한 유일한 왕이 아니었을까? 다른 왕들을 위해서 사람들은 교회에서 만수무강을 기원했지만, 그 왕을 위해서 장 샤를리에 제르송 재상은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 그 당시 그는 이미 가장 초라한 이였고, 왕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몹시 가난하고 불운했다.
그 당시 때때로 얼굴을 검게 칠한 낯선 남자들이 침대에 누워 있는 왕에게 들이닥쳤다. 종기로 문드러진 속옷을 찢어내기 위해서였다. 왕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속옷을 자신의 몸이라 여기고 있었다. 방은 어두웠다. 그들은 왕의 뻣뻣한 팔 밑에서 문드러진 옷 조각을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아당겼다. 그 다음에 누군가가 불을 밝혔다. 그때 그들은 처음으로 왕의 가슴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 그 상처 속에는 쇠 부적이 박혀 있었다. 그것을 왕이 밤마다 온 열정과 힘을 다해 자신의 가슴에다 눌러댔기 때문이다. 그 부적은 왕의 몸 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부적은 진주 같은 고름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마치 성유물함 속의 기적을 행하는 성자의 유물처럼 귀중해 보였다. 억센 일꾼을 불러모았지만, 방해받은 구더기들이 플란넬 속옷에서 기어나와 옷 주름 사이로 떨어져, 그들의 소매 여기저기로 기어오를 때면 역겨움을 참지 못했다. 분명히 왕의 병세는 파르바 레기나와 함께 있던 시절 이래로 더욱 나빠졌다. 젊고 깨끗했던 그녀는 왕의 곁에 눕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죽었다. 이제 감히 어떤 여자에게도 이 썩은 고깃덩어리 옆에서 함께 자라고 권할 수가 없었다. 파르바 레기나는 왕이 위로를 느낄 수 있는 말과 부드러운 애무를 남겨놓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더 이상 왕의 거칠어진 정신 속으로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왕을 영혼의 심연에서 구해주지 못했다. 그러다 왕이 갑자기 목초지로 향하는 짐승의 둥그런 눈을 하고 심연에서 스스로 걸어나왔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왕은 주베날 드 우르쟁의 허둥지둥하는 표정을 알아보고는, 자신의 나라 사정이 전에 어떠했는가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왕은 이제까지 지체한 일을 만회하려고 했다.
그 시대의 사건은 그러나 조심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모두 엄청난 일이었다. 그래서 그 사건을 말하려면 전모를 다 말해야 했다. 왕의 동생이 살해되었고, 그가 사랑스런 누이라고 부르는 발렌티나 비스콘티가 어제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검은 상복의 베일을 걷어 올려 비탄과 비난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드러냈다. 여기에서 무엇을 생략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오늘은 집요하고 입심 좋은 변호사가 와서 왕의 동생을 살해한 부르고뉴 공작의 정당성을 몇 시간 동안 증명하여, 마침내 그 범죄가 투명해져서 밝게 빛나며 하늘로 올라가는 듯했다. 공정하다는 것은 모두에게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오를레앙 공의 부인 발렌티나에게 복수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비탄 때문에 죽었다. 그러니 부르고뉴 공작을 용서하고 또 용서한다 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공작은 어둡고 절망적인 격정에 사로잡혀 벌써 몇 주일 전부터 아르질리 숲 깊숙이 마련한 천막 속에 기거하면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밤마다 사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했다.
이 모든 일을, 이 간단한 사건의 전말을 끝까지 몇 번이고 계속해서 생각해본 연후에 백성들은 왕을 보기를 갈망했고 마침내 그를 보았다. 왕은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기뻐했다. 그들은 이 사람이 바로 참된 왕임을 알았다. 신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수 나서게 하기 위해 살고 있는 듯한 이 조용하고 인내심 많은 사람이 왕임을 알았다. 이런 것들이 밝혀진 순간에 아마도 왕은 생 폴 궁전의 발코니에서 자신의 비밀스런 진보를 예감했을 것이다. 로스베케에서의 그날이 생각났다. 그날은 백부 장 드 베리 공이 그의 손을 잡아 최초의 완전한 승리로 이끌어준 날이었다. 그는 이상하게 늦도록 환했던 11월의 그날 강트인의 시체더미를 보았다. 그들은 사방에서 말을 타고 달려드는 공격을 받고 궁지에 몰린 나머지 질식해 주었다. 그들은 거대한 뇌수처럼 서로 얽혀서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가까이 있기 위해서 그들은 서로를 함께 묶어 덩어리를 이루었던 것이다. 도처에 널려 있는 그들의 질식한 얼굴을 볼 때면 공기가 사라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절망한 많은 영혼이 갑자기 빠져나가는 바람에 공기가 시체 위로 멀리 밀려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밀고 밀치면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 선 채로 죽어 있었다.
이 장면은 그의 명성의 출발점으로 마음속에 깊이 간직되었다. 왕은 그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당신의 사건이 죽음의 승리였다면, 지금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허약한 무릎으로 이렇게 똑바로 서 있는 것은 사랑의 신비였다. 전쟁터가 그렇듯 끔찍하지만, 어쨌든 이해할 수 있는 일임을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사건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젠가 금목걸이를 하고 샹리스 숲에 나타난 사슴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경이로울 따름이다. 다만 오늘은 사람이 아니라 그 자신이 나타났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백성들은 숨을 죽이고 왕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젊은 날의 사냥길에서, 사슴이 나뭇가지 사이로 나타나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을 때 엄습했던 것 같은 광활한 기대감이 백성들에게도 가득 차 있음을 왕은 의심하지 않았다. 모습을 드러낸 신비로움이 왕의 부드러운 형상을 감싸고 있었다. 왕은 쓰러질까 두려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왕의 넓고 소박한 얼굴 위에 어려 있는 엷은 미소가 돌로 만든 성자상의 미소처럼 자연스럽게 지속되었다. 미소 지으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왕은 그렇게 한참을 서서 견디었다. 그것은 영원을 축약해 놓은 그런 순간이었다. 백성들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한없이 커져가는 위안에 고무되어 백성들은 기쁨의 외침으로 이 고요를 깨뜨렸다. 그러나 발코니 위에는 이제 주베날 드 우르쟁만이 서 있었다. 그는 군중이 다시 조용해지자 왕이 생 드니 거리의 수난교단으로 가서 신비극을 보실 것이라고 소리쳐 알렸다.
그 당시 왕은 온화한 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만일 그 시대의 화가가 천국의 생활을 그리기 위해 무슨 근거를 찾고 있었다면, 루브르 궁전의 높은 창문 아래에 어깨를 웅크리고 서 있는 왕의 고요한 모습이 완전한 모델이 되었을 것이다. 왕은 크리스티네 드 피상의 자그마한 책을 읽고 있었다. 그에게 헌정된 <길고 긴 배움의 길>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세계를 지배할 만한 기품을 갖춘 군주를 찾아내기 위해 우의적인 의회가 벌이는 현학적인 논쟁을 그는 읽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가장 단순한 부분을 펼쳤다. 고통의 불길 위에 얹힌 증류기처럼 13년의 세월을 오로지 고뇌의 눈물을 맑게 증류하는 데 헌신한 여인의 마음을 서술한 부분이었다. 행복이 멀리 지나가고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참된 위안이 시작된다는 것을 왕은 이해했다. 이 위안보다 왕에게 더 살가운 것은 없었다. 왕은 겉으로는 창 밖의 다리를 보고 있는 척했지만, 내면에서는 쿠메아의 강한 무녀에게 이끌려 큰 길로 나아간 크리스티네의 마음을 통해서 당신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모험으로 가득 찬 위험한 바다, 주변의 광활함에 대한 반동으로 문을 닫아 건 낯선 탑이 있는 도시들, 첩첩산중에서의 황홀한 고독, 두려운 회의 끝에 찾아낸 우주, 마치 갓난아기의 두개골처럼 이제 막 봉합된 우주를 보았다.
그러나 누군가 들어오면 왕은 깜짝 놀랐고 정신이 서서히 몽롱해졌다. 그리고는 그들이 마음대로 자신을 창가에서 데려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사람들은 왕에게 몇 시간 동안이고 그림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습관을 심어주었다. 왕은 만족했다. 그러나 책장을 넘겨야 했기에 여러 장의 그림을 한꺼번에 늘어놓을 수도 없고, 이절 판의 커다란 책 속에 그림이 붙박여 있어서 서로 뒤섞을 수도 없는 것이 속상했다. 그때 누군가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던 카드놀이를 생각해냈다. 왕은 카드를 가져다준 사람을 총애했다. 하나하나 움직이며 화려한 그림으로 가득 찬 이 카드는 그만큼 왕의 마음에 들었다. 카드놀이가 궁정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었지만, 왕은 자신의 서재에 앉아서 혼자서 놀이를 했다. 그가 우연히 두 장의 킹 카드를 나란히 펼친 것처럼, 신은 최근에 그와 벤첼 황제를 만나게 해주었다. 종종 왕비가 죽기도 했는데, 그러면 그는 하트 에이스를 그 카드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면 마치 묘비 같았다. 이 카드놀이에 여러 명의 교황이 나온다는 사실을 왕은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 그는 책상의 저쪽 끝에 로마를 세웠다. 그리고 여기. 그의 오른편 아래는 아비뇽이었다. 그에게 로마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로마다 둥그럴 것이라고 상상했는데, 그 생각을 계속 고집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비뇽은 잘 알고 있었다. 아비뇽을 생각하자마자 높다란 밀폐된 궁전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고, 그 기억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왕은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셔야 했다. 그날 밤 나쁜 꿈을 꿀 것 같아 두려웠다.
전체적으로 보아 카드놀이는 정말로 위안을 주는 일이었다. 왕에게 그 놀이를 권한 사람들이 옳았다. 카드놀이를 할 때면 그에게는 자신이 왕이며, 샤를 6세라는 확신이 강해졌다. 그렇다고 그가 과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한 장의 카드보다 나은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어떻든 정해진 카드일 것이라는, 아마도 형편없는 카드거나 항상 지기만 해서 화가나 내던져 버린 카드일지 모르지만 언제나 같은 카드이며 결코 다른 카드는 아니라는 확신이 강해졌다. 이처럼 한결같이 자신을 확인하면서 일주일을 보내자 그는 답답해졌다. 마치 너무도 뚜렷한 자신의 윤곽을 갑자기 느낀 것처럼 이마와 목 주위의 피부가 팽팽해졌다. 그러고 나서 왕은 신비극에 대해 묻고 그것의 시작을 참지 못하고 기다렸는데, 무슨 유혹에 끌려서 그랬는지 아무도 몰랐다. 마침내 극이 시작되자 왕은 생 폴 궁즌보다 생 드니 거리의 극장에 더 많이 머물렀다.
이 극의 숙명적 불행은 대사가 계속 보완되고 늘어나서 수만 줄의 시행으로 자라나는 바람에 마침내 극중의 시간의 길이가 현실의 시간과 같아졌다는 데 있다. 마치 지구를 척도로 해서 같은 크기의 지구의를 만들려는 것과 같았다. 공허한 무대의 아래쪽에는 지옥이 있고, 위쪽으로는 기둥 위에 세워진 난간 없는 발코니가 천국의 높이를 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천국에 대한 환상을 약화시키는 데 이바지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기는 천국과 지옥을 실제로 이승에다 구현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 세기는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두 세계의 힘을 빌어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500년 전에 교황 요한 22세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던 아비뇽 기독교의 시대였다. 본의 아니게 이리저리 피난을 다녔던 시대였는데, 아비뇽의 교황 궁전은 요한 22세가 죽은 뒤 그가 통치하던 자리에 세워졌다. 이 궁전은 거처를 잃은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위한 피난처처럼 무겁고 폐쇄적이었다. 자그맣고 가벼우며 정신적인 노인이었던 교황은 아직 열린 공간에서 살았다. 아비뇽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지체없이 사방으로 신속하고 민첩하게 활동을 시작했으나, 그의 식탁에는 독약을 넣은 음식이 놓여 있었다. 첫 번째 잔은 언제나 쏟아버려야ㅑ 했다. 시종이 일각수의 뿔을 잔에 넣었다가 꺼내보면 늘 색이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흔 살의 노인은 누군가가 그를 파멸시키기 위해 그를 본떠 만든 밀랍인형을 들고 다니며 어디에 숨겨야 할지 몰라서 쩔쩔맸다. 그러다 인형에 깊숙이 꽂아놓은 긴 바늘에 긁히기도 했다. 그 인형을 녹여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의지가 강했던 그도 이 끔찍한 물건에 너무 놀라서, 인형을 녹이면 자신도 불 속의 밀랍처럼 죽어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의 쪼그라든 몸은 두려움 때문에 더욱 물기가 빠져나가서 점점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의 몸이 아니라 그의 왕국의 몸체에 달려들었다. 유태인들이 그라나다로부터 모든 기독교인들을 말살하라는 사주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무서운 하수인을 매수했다는 소문이었다. 첫 소문이 나돌자마다 사람들은 나환자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믿었다. 나환자가 무서운 병균이 묻은 꾸러미를 우물에다 집어넣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벌써 여럿 되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린 것은 신앙이 경박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들고 있기에 신앙이 너무 무거워서였다. 그래서 신앙은 떨고 있는 사람들의 손에서 미끄러져 우물 바닥으로 가라앉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 열성적인 노인은 다시금 나병균이 자신의 핏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했다. 미신에 사로잡혀 있던 그때에 교황은 자신과 측근들을 위해 어둠의 악마를 막기 위한 기도를 올리도록 교시를 내렸다. 그래서 저녁이면 불안에 떠는 온 세계에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기원의 종소리가 울렸다. 교황이 내리는 그 밖의 다른 모든 칙서와 교서는 치료약이라기보다는 향료를 섞은 포도주와 같았다. 황제는 그의 치료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지치지 않고 황제의 제국이 병든 증거를 들이댔다. 그리하여 이미 먼 동방에서도 이 고압적인 의사에게 문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만성절에 교황은 평소보다 길고 열정적인 설교를 했다. 자신의 신앙을 스스로의 눈으로 다시 확인해 보려는 갑작스러운 욕구를 그는 내보였다. 그는 85년 동안 간직해온 영혼의 성궤에서 자신의 신앙을 온 힘을 다해 천천히 들어올려 설교단 위에 펼쳐보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에게 소를 질렀다. 온 유럽이 비난을 했다. 그의 신앙이 틀렸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교황이 사라졌다. 며칠 동안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는 기도실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기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있는 사람들의 비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마침내 그는 명상에 지친 힘든 모습으로 나타나서 자신의 신앙을 취소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취소했다. 그의 정신은 취소하는 데에서 소년의 열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심지어는 자신의 회한을 이야기하기 위해 밤에 추기경들을 깨우는 일도 있었다. 아마도 그의 생명을 무한히 지탱시켜준 것은 그를 미워하며 보러오지 않으려는 나폴레옹 오르시니 추기경 앞에 무릎을 꿇고 참회할 날이 오리라는 희망이었는지 모른다.
야콥 폰 카오르는 이렇게 자신의 신앙을 취소했다. 이 사건 뒤에 곧바로 리뉘 백작의 아들을 저승으로 불러들임으로써 하느님도 교황의 잘못을 증명해 보이려 한 것인지도 몰랐다. 백작의 아들은 성인으로 천국에 들어가 영혼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지상에서 다만 성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추기경 시절의 이 청순한 소년의 모습과, 소년 시절에 이미 주교가 되고 열여덟 살이 채 못 되어 완성의 희열 속에서 세상을 떠난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유로워진 순수한 생명을 품고 있는 그의 무덤가의 공기가 오랫동안 시체에 영향을 미쳤기에 사람들은 죽은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일찍 성자가 되어버린 사실 자체가 무언가 그 시대의 절망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소년의 순수한 영혼의 직조물이 다만 그 시대의 진홍색 물감통 속에서 환하게 채색되기 위해 잠시 세상에 펼쳐졌던 것이라면, 그 시대를 견뎌야 했던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너무 불공평하지 않았을까? 빛나는 이들은 왜 지상의 고단한 양초 제조공들 사이에 머물지 않는 것일까? 요한 22세가 최후의 심판 전에는 그 어느 곳에도, 천국에 있는 이들에게도 완전한 행복이란 없다고 주장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 지상의 캄캄한 어둠이 아니었을까? 사실 이 지상은 그렇듯 짙은 혼돈에 싸여 있는데, 어딘가 저 위에는 이미 신의 광휘 속에서 천사에게 몸을 기댄 채 하염없이 신을 바라보며 만족을 느끼는 얼굴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그 얼마나 독선적인 고집이 필요한 일인가.

추운 밤에 나는 앉아서 글을 쓰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에 그 남자를 만났기 때문에 알게 된 것 같다. 그 남자는 매우 컸다. 그는 큰 덩치 때문에 눈에 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찌어찌해서 저녁 무렵에 혼자서 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는 뛰어가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서는 바로 그 순간에 그 남자와 부딪혔다. 기껏 해야 5초 동안 어떻게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아주 압축해서 이야기한다 해도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다. 그와 부딪히는 바람에 몹시 아팠다. 나는 당시 어렸기에 울음을 터뜨리지 않은 것만도 대견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위로받기를 기대했다. 그 남자가 가만히 있자 나는 그가 당황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해결할 적당한 농담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런가보다고 추측했다. 나는 이미 그를 기꺼이 도와줄 기분이 되어 있었다. 그러자면 그 남자의 얼굴을 보아야 했다. 아까 말했지만 그는 키가 컸다. 그런데 그는 당연히 그래야 할 텐데도 내게 몸을 숙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내가 예상치 못했던 높이에 있었다. 내 앞에는 여전히 조금 전에 그의 옷에서 느꼈던 냄새와 독특하게 단단한 감촉만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던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적의에 찬 얼굴이었던 것은 기억한다. 그리고 그 얼굴 옆으로, 바짝 옆으로 그의 부라린 눈 높이쯤에 두 번째 머리처럼 보이는 그의 주먹이 들어올려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다시 숙일 틈도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왼쪽으로 빠져나가 무서운 텅 빈 골목길을 곧장 달려 내려갔다. 아무것도 용서해 주지 않는 그 낯선 도시의 골목길을 달려 내려갔다.
지금 내가 이해하고 있는 저 어렵고, 격렬한 절망의 시대를 나는 바로 그 어린 시절에 이미 경험한 것이다. 화해하는 두 사람의 입맞춤이 다만 주변에 서 있던 자객에게 보내는 신호였던 시대를 말이다. 두 사람은 같은 잔으로 술을 마시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같은 말을 타고, 밤이면 한 침대에서 잔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유대 관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반감이 너무도 절박해서, 상대방의 혈관이 뛰는 것을 볼 때마다 마치 두꺼비를 본 듯한 병적인 구역질이 치밀어올랐다. 아우가 좀더 많은 유산을 받았다 하여 형이 아우를 습격하여 감금하는 시대였다. 학대받은 아우의 편을 든 왕은 그에게 자유와 재산을 돌려주었다. 먼 곳에서 다른 운명에 휘말려 있던 형은 이제 동생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고백하고 편지로 자신의 잘못을 참회했다. 그러나 풀려난 아우는 이 모든 조치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했다. 그 세기는 순례자의 옷을 입고, 항상 새롭게 놀라운 서약을 하면서,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떠도는 아우의 모습을 기록해 놓고 있다. 부적을 몸에 지니고 그는 생 드니의 수도사에게 자신의 두려움을 나지막이 말해주었다. 그 수도원의 장부에는 오랫동안 그가 성 루이에게 바치려 했던 백 파운드짜리 양초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결국 자신의 고유한 삶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형의 질시와 분노가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의 가슴을 누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경탄을 받던 포아 백작 가스통 푀부스는 영국 왕이 임명한 루르드의 대장이며 자신의 사촌인 에르노를 공공연하게 살해하지 않았던가? 이 분명한 살인은 백작이 자신의 아들을 죽인 그 끔찍한 우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백작은 느닷없이 화를 내며 아름답기로 유명한 손을 누워 있는 아들의 목에 가져갔는데, 날카로운 손톱용 작은 칼을 들고 있던 것을 잊었던 것이다. 방은 어두웠다. 피를 보기 위해서는 불을 켜야 했다. 피는 탈진한 소년의 작은 상처에서 남몰래 흘러나와 이 훌륭한 가문에서 영원히 떠나갔다.
그 시대에 누가 살인을 자제할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가? 극단적인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있었을까? 한낮에 도처에서 자신을 노리는 암살자의 탐색하는 듯한 시선과 마주치면 기이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면 그는 물러나서 방에 틀어박혀 유언장을 쓰고, 마지막으로 버드나무로 엮은 상여와 셀레스틴파의 수도복과 매장할 때 뿌릴 재를 준비하라고 시켰다. 낯선 음유시인들이 성 앞에 나타나 그의 막연한 예감과 일치하는 노래를 부르면 후한 상을 내렸다. 개들의 시선에도 의심이 들어 있었고 주인을 모실 때에도 전보다 불안해했다. 일생 동안 유효했던 격언에서도 다른 새로운 의미가 가만히 고개를 내밀었다. 오랫동안 간직했던 습관이 진부하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그를 대신할 다른 습관이 생겨나지도 않았다.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믿지도 않으면서 대충 하는 것에 불과했다. 어떤 추억들은 그와는 반대로 예기치 않게 궁극적으로 보였다. 저녁이면 불가에 앉아 그 추억에 몸을 맡기려 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바깥의 밤이 갑자기 강하게 귀에 들려왔다. 자유롭거나 위험한 많은 밤을 겪은 귀는 여러 종류의 적막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놓인 밤, 하나의 밤이 아니라, 그냥 밤이었다. 아, 하느님, 이 밤이 지나면 부활이다. 이런 시간에 사랑하는 여인을 기릴 수는 없었다. 사랑하는 여인들은 모두 이별의 노래나 헌시 속에 잘못 들어가 있었고, 길고 치렁치렁하고 화려한 이름 속에서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기껏해야 자신의 사생아가 자신을 쳐다보는 그윽한 눈길 속에서 사랑했던 여인의 모습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밤참을 먹기 전 은대야에 담근 두 손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이 두 손이 서로 무슨 연관을 갖고 있단 말인가? 쥐었다 폈다 하는 동작 사이에 무슨 연결이나 연속성이 있는가? 아니다. 두 손은 서로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다. 두 손이 서로를 지워버려서 행위란 존재하지 않았다.
행위는 수난극을 하는 선교단원들에게만 있었다. 왕은 그들의 행위를 보고는 그들에게 친히 특별허가증을 만들어 주었다. 왕은 그들을 친애하는 형제라고 불렀다. 이처럼 왕에게 누군가가 가깝게 느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이런 의도를 지니고 세속을 돌아다녀도 된다는 허락도 내려졌다. 그들이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켜서, 질서가 있는 그들의 행위 속으로 끌어들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왕 자신도 그들에게서 배우기를 열망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왕도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징표와 의상을 걸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로 나오고, 나가고, 대사를 말하고, 향을 바꾸는 그들의 행위에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엄청난 희망이 그의 마음속에 가득 차 올랐다. 조명이 불안정하고 이상하게도 불확실한 삼위일체 요양원의 커다란 홀 특별석에 날마다 나타난 왕은 흥분해서 일어서기도 하면서 학생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극을 보며 다른 이들은 울었다. 왕의 마음 속에 빛나는 눈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는 다만 눈물을 참기 위해 차가운 손을 꼭 마주 잡고 있었다. 가끔 클라이맥스에서 대사를 마친 배우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면 왕은 얼굴을 들고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성 미카엘이 거울처럼 반짝이는 은빛 투구와 갑옷 차림으로 저 위, 무대 위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순간이면 왕은 몸을 일으켰다.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행위에서 다른 수난극, 즉 그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위대하며 불안하기만 한 세속의 수난극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모든 사람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넘실대는 횃불이 그에게 다가왔고 둥그런 천장에 형체 없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모르는 사람들이 왕을 잡아끌었다. 왕은 연기를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고, 그의 몸짓은 아무런 동작도 되지 못했다. 왕의 주위로 사람들이 아주 독특하게 밀려왔다. 왕은 이제 자신이 십자가를 져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왕은 그들이 십자가를 가져오기를 기다리려고 했다. 그러나 힘이 더 센 그들이 왕을 서서히 밖으로 밀어냈다.

외부에는 많은 것이 변했다.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부에는 그리고 신이여, 당신 앞에서는 어떤가. 관객인 당신 앞에서 우리는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맡은 역할을 모르고 있음을 안다. 우리는 거울을 찾아 분장을 지워내고 잘못된 것을 없애버리고 진실해지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어딘가에 한 조각의 분장이 남아 있다. 우리의 눈썹에는 과장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우리의 입술 끝이 비뚤어져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이런 상태로 우리는 돌아다니고 있다. 조롱거리이자 반쪽 존재인 채로, 진실한 존재도 아니고 배우도 아닌 채로.





no
subject
name
date
hit
*
469
  파울 첼란 <2>

보리
2012/09/27 5580 967
468
  파울 첼란

보리
2012/09/12 5532 801
467
  실비아 플라스의 시-아빠

보리
2011/08/19 7574 894
466
  실비아 플라스의 시-거울

보리
2011/08/19 8192 981
465
  실비아 플라스의 시-은유

보리
2011/08/19 5815 820
464
  시인을 소재로 한 영화④/실비아 플러스

나루
2011/08/15 8114 957
463
  테드 휴즈-시작법<2> [2]

보리
2011/07/11 4739 820
462
  테드 휴즈-시작법<1>

보리
2011/06/26 7287 826
461
  테드 휴즈의 작품들

보리
2011/05/29 5798 870
460
  테드휴즈-나뭇가지에 앉은 매

보리
2011/05/29 7858 815
459
  테드휴즈-두 전설

보리
2011/04/19 5078 829
458
  생각-여우 외 1편 [1]

보리
2011/04/04 5065 892
457
  이달의 시인-테드휴즈

보리
2011/04/04 5170 868
456
  20세기의 한 완성(엘리엇의 시 세계)

무당
2011/02/23 9879 789
455
  우는 처녀

보리
2011/02/22 4069 747
454
  전주곡들

무당
2011/02/22 4442 900
453
  황무지

무당
2011/02/21 5774 842
452
  찌질한 독백의 종결자 T.S엘리엇

보리
2011/02/13 7152 846
451
  말테의 수기 (11)

무달
2008/10/26 5966 760

  말테의 수기 (10)

무달
2008/10/26 5280 1043
1 [2][3][4][5][6][7][8][9][10]..[24] [next]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Ze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