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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질한 독백의 종결자 T.S엘리엇
[2011년 2월 이달의 시인]T.S 엘리엇

T.S 엘리엇

1888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출생
1906년 하버드대학에 입학
1908년 습작시 하버드 교지에 발표
1910년 하버드 대학 대학원 졸업, 파리 소르본느대학서 1년간 공부
1915년 <프루프록의 사랑노래> 발표
1922년 <황무지> 발표
1925년 <엘리엇 시선> 출간
1948년 노벨문학상 수상
1965년 사망


2011년 2월의 시인은 Thomas Stearns Eliot 입니다. 저는 이 시인을 무척 좋아하는 고로, 토마스라는 이름도, 스턴스라는 이름도, 엘리엇이라는 이름도 다 좋아합니다.

그의 시 <황무지> 가운데 '4월은 잔인한 달..'하는 문구가 정말로 유명하죠. 제가 오늘 소개할 시는 그가 아직 파릇한 청년이던 20대 초반에 쓴 <프루프록의 사랑노래>입니다. 아주 '찌질'의 끝을 달리는 내면 독백을 적나라하게 적은 시죠...



세상의 문학 작품을 다양한 방법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저는 문학 작품 속의 화자가 작가와 동일시되는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으로도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이혼하고 섹스 대상으로의 여자 친구를 가끔 만나는 30대 초반의 남자, 글 쓰는 일을 해서 먹고 살고 자아를 찾기위해 투쟁하며, 다소 건조한 일을 하는 싱글남을 화자로 내세우거든요. 그런데 이게 묘하게 하루키 자신인 것처럼 생각되면서 작가에게 더 친근한 감정이 들도록 하는(나아가 그 작품에 대한 애착도 강해지는) 은근한 혼동을 불러일으키거든요.


T.S 엘리엇의 <프루프록의 사랑노래> 역시 그처럼 작가와 시의 화자가 막 서로 헷갈리는, 그런 시입니다. 이 시에는 제사가 달려있는데요, 이 제사가 자못 무시무시합니다. 단테 <지옥편>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지옥을 방문한 단테에게 지옥 불 속에서 벌받는 한 죄인이 자신의 추악한 삶을 고백하며 하는 말입니다.


-만약 지상으로 되돌아갈 사람에게
대답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
이 불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리라.
내 들은 바에 의하면
이 지하에서 살아 돌아간 자 하나도 없으므로
명예가 더럽혀질 염려 없이 그대 물음에 답하리라.

그러니까 이 시가, 지옥불 속에서처럼 끔찍한 고통을 받는 프루프룩이란 사람이 자신의 고통과 이런 고통을 받게 된 죄에 대해 고백하는 내용이라는 점이 제사에 담겨있습니다. 아울러 이 제사를 읽은 독자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듣게 되는 고백에 대해, 무덤까지 가져감으로서 화자의 명예를 지켜줘야 한다는 결연함도 함께 얻게 되죠.


시의 내용은 프루프록 자신의 고백입니다. 너무 날카롭게 벼려진 자아로 혼자 가슴을 뜯어본 사람이라면 한 구절 한 구절이 구구절절 사무칠 것이에요. 내용은 아주 심플합니다. 대머리가 까지고 팔다리는 가느다란, 허악한 한 중년 남자가 저녁 무렵에 퇴근을 하면서 막 고민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혼자 연애 망상에 빠져서 막 이거저거 중얼거리다가, (아직 고백할 시간은 있겠지? 내가 계단을 이렇게 걸어서 내려가면 내 대머리가 보일까?여자들이 욕할지도 몰라. 아냐 아직 시간은 있을 거야. 내일은 꼭 누군가에게 데이트를 신청할테야. 아 나는 왜 이렇게 결단력이 없을까. 햄릿이 이렇게 우유부단했지. 아냐, 햄릿은 왕자였지, 나는 그 시종정도도 안되는 못난이인걸 어쩌구..)

주저하고 망설이고 또 주저하고 망설이고, 정말 자학과 우유부단의 끝을 달립니다.
  
T.S.엘리엇은 학창시절 굉장히 수줍은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반면, 세상에 대적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막 사람들 앞에 나서는 연습도 하고 각종 활동도 활발히 하고 그랬던 모양입니다. 또 그의 시는 굉장히 도회적이죠. 도시인의 감수성으로 시를 썼는데, 분명 이건 전원의 낭만하고는 다른 시풍, 좀 건조하기도 하고 세련되고, 냉소적이기도 하고 그런 것이거든요.  

도시에서 나서 자라고, 수줍지만 자신에 대한 목표가 높고, 그래서 <도대체 이게 가치가 있을까. 보람이 있을까>라고 끊임없이 고민하며 조소하고 찬양하고 갈등하면서 살고 있는 저는, 그래서 T.S 엘리엇을 마음 속의 스승님으로 모시고 있고, 다시 시작한 첫번째 이달의 시인으로 택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야말로 그런 갈등의 아주 최고봉을 보여주고 있고요.  
  


다음이 이 시의 전문이에요.
(민음사에서 나온 TS엘리엇 전집에서 가져왔습니다.)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사랑노래


           만약 지상으로 되돌아갈 사람에게
           대답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
           이 불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리라.
           내 들은 바에 의하면
           이 지하에서 살아 돌아간 자 하나도 없으므로
           명예가 더럽혀질 염려 없이 그대 물음에 답하리라.


자 가세, 너와 나,
마취되어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환자모양
저녁이 하늘을 뒤로 하고 널부러져 있을 때:
자 가세, 사람 자취 반 이상 끊긴 모모 거리를 지나  
일박용 싸구려 호텔의 잠 못 이루는 밤들과
굴 껍질 섞인 톱밥 밑에 깐 레스토랑의
중얼대는 피정들을 지나
난처하고 거창한 질문으로 끌고 가려는
음흉한 의도를 지닌
질질 끄는 논쟁처럼 따라오는 길들을 지나.....
오 <이게 뭐지?>하고 묻지 말게
자 가서 방문을 하세.

방에서는 여자들이 오가며
미켈란젤로에 대해 얘기를 하고.

등을 창 유리에 비비는 노란 안개
주둥이를 창 유리에 비비는 노란 안개,
저녁의 구석구석에 혀를 넣고 핥다가
하수도에 고인 물웅덩이에서 머뭇대다가
꿀뚝에서 떨어지는 검댕을 등으로 받고,
테라스를 빠져 나가, 별안간 한 번 살짝 뛰고는
때가 녹녹한 시월 밤임을 알고
한 번 집 둘레를 돌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시간은 있겠지
창 유리에 등을 비비고
거리를 따라 미끄러지듯 가는 노란 안개에게:
시간은 있겠지, 암 있고 말고,
네가 만날 얼굴들을 만나기 위해 얼굴을 꾸밀:
사람을 죽이고 애를 배게 할 시간이,
문제를 들어 네 접시에 놓을
손의 일과와 세시에게도:
너를 위해서도 시간, 나를 위해서도 시간이 있겠지
아직 백 번은 망설일 시간이
백 번 보고 또다시 볼 시간이,
토스트 곁들인 차를 마시기 전에.

방에서는 여자들이 오가며
미켈란젤로에 대해 얘기를 하고,

그리고 정말 시간은 있겠지
<해낼 수 있을까?> <해날 수 있을까?> 자문할,
돌아서서 층계를 내려올 시간이
머리칼 한중간이 대머리된 머리를 하고-
(여자들은 말하리라: <어마 이 사람 머리숱이 빠지는 걸!>
내 예복, 바싹 턱까지 올라온 내 깃,
값지되 젊잖은 내 넥타이, 소박한 핀 때문에 드러나는-
(여자들은 말하리라: <허지만 그의 팔다리는 왜 이리 야위었지!>
내 감히
우주를 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단 일분 안에도 일분이 뒤집을
몇 차례 결심을 하고 또 수정을 할 시간이 있지.

왜냐하면 나는 그들을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 다-
저녁과 아침과 오후 일들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커피 스푼으로 내 삶을 재어 왔기 때문에:
먼 방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깔려 점점 여리게로
들리지 않게 되는 목소리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 내 어찌 감행할 수 있으랴?

그리고 나는 그 눈들을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 다-
공식적 문구로 사람을 정해 버리는 눈들,
내가 공식으로 졸아들어, 핀 위에서 허위적거릴 때,
내가 핀에 꽂혀 벽에서 꿈들거릴 때,
그때 어떻게 나는 일상 생활의 모든 꽁초를
뱉아 버리기 시작할 것인가?
          그리고 내 어찌 감행할 수 있으랴?

그리고 나는 그 팔들을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 다-
팔찌를 낀 희고 벗은 팔들을
(허나 램프 불빛 아래 갈색 솜털로 덮인!)
내 말을 이처럼 곁길로 빠지게 하는 건
옷에서 풍기는 향수 때문일까?
식탁에 놓여진, 혹은 숄을 휘감는 팔들.
        그리고 그때 나는 감행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

. . . . .

이렇게 말할까, 황혼 무렵 좁은 거리를 걷다가
창박으로 팔 내민 셔츠바람의 외로운 남자들의
파이프에서 오르는 담배 연기를 자세히 보았노라고?

차라리 나는 소리 없이 바다 바닥을 허둥대며 건너는
한쌍의 털보숭이 집게발이었으면.

. . . . .

그리고 오후가, 저녁이, 이처럼 편안히 잠자는구나!
긴 손가락의 애무를 받으며
잠들고.......피곤해 하고......혹은 잠투정한다,
여기 너와 내 옆, 마루에 몸을 뻗고.

차와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
나는 순간을 위기로 몰고 갈 힘이 있을까?
그러나 내 비록 울고 단식하고, 울고 기도했어도,
비록 내 머리가(약간 벗어진 채로) 쟁반에 담겨 내오는 것을 보았어도,
나는 선지자가 아니야-그리고 여기엔 예언할 만큼 큰일도 없고,
나는 내 위대함의 순간이 껌벅거리는 것을 보았지,
그리고 영원한 하인이 내 웃옷을 들고 킥킥대는 것을 보았어,
간단히 말해, 나는 겁이 났어.

그리고 해볼 가치가 있을까, 결국에 가서,
잔을 들어 마멀레이드와 함께 차를 든 후에,
도자기들 사이에서, 너와 나의 어떤 얘기 사이에서?
해볼 가치가 있을까,

미소 띄우며 문제를 깨물어 끝을 잘라 내는 일이,
우주를 짓눌러 하나의 공을 만들어
어떤 난처하고 거창한 문제를 향해 굴리는 일이?
<나는 그대들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기 위해
죽은 자들 사이에서 온 라자로이다, 모든 걸 말하리라>고 한들-
  만약 한 여자가 머리맡에 있는 베개를 고쳐 놓으며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요.
        전혀 그런 뜻이>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해볼 가치가 있을까, 결국에 가서,
해볼 가치가 있을까,
황혼과 마당과 물 뿌린 거리를 본 후에,
소설과, 찻잔과, 마루를 따라 끝을 끄는 치마들이 있은 후에-
그리고 이것과 훨씬 더 많은 것을 겪은 후에?-
내 진의는 말로 하기가 불가능하다!

단지 마치 환등이 스크린 위에 신경조직을 비치는 것같이만
해볼 가치가 있을까,
만약 한 여자가, 베개를 고쳐 놓거나 숄을 벗어 던져 놓으며,
창문을 향해 몸을 돌리고,
   <전혀 그런 뜻이,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요>라고 한다면.

. . . . .

아니 난 햄릿 왕자가 아니지, 되려고 한 적도 없지:
시종관이지, 임금님 행차에 사람 수나 늘리는,
연극 한 두 마당을 열고,
왕자님께 충고하고:틀림없이 손쉬운 수족,
공손하고, 기꺼이 이용당하고,
교활하고, 조심성 많고, 좀스러운:
호언장담하지만, 약간 우둔한:
사실 때로는 거의 궁정의 어릿광대.

나는 늙어 간다.....늙어 간다....
바짓자락을 접어 입을까?

머리뒤로 가르마를 탈까? 감히 복숭아를 먹어 볼까?
나는 하얀 플라넬 바지를 입고, 해변을 걸을 테다.
나는 인어들이 노래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지, 서로 서로에게.

그들이 나에게 노래해 주리라곤 생각 안 해.

나는 그들이 파도를 타고 바다를 향해 나가며
바람에 불린 파도의 하얀 머리를 빗질하는 모습을 보았지
바람이 바닷물을 휘불어 희고 검게 만들 때.
우리는 바다의 방들 속에서 서성댔다
적갈색 해초 관을 쓰고 잇는 바다 처녀들 곁에서.
이윽고 인간의 목소리들이 우리를 깨워, 우리는 익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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