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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의 한 완성(엘리엇의 시 세계)
20세기의 한 완성
-T. S. 엘리엇의 시 세계

… 정현종 (민음사판 『황무지』해설)




1
개인의 기호에 관계 없이 20세기를 대표하는 시 한 편만을 고르라면 「황무지」가 뽑힐 공산이 크다. 이 작품은 1922년 출판되자 곧 <새로운 시>의 보통 명사가 되었고 그 새로운 시에 <모더니즘>이라는 팻말이 붙은 후에는 모더니즘의 대표작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리고 다른 모든 문화 현상과 마찬가지로 명성의 오르내림을 겪었다. 그러나 모더니즘이 한창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헤게모니를 상당히 빼앗긴 지금에 와서도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매력은 그대로 남아 있다. 오히려 최초의 뛰어난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으로 평가하는 비평가들이 생길 정도인 것이다.
엘리엇을 이해하는 데는 모더니즘을 20세기 전반의 문학 조류의 하나로 보는 입장과 더불어 또 하나의 입장, 즉 서구 문학이 칸트 이래로 추구해 온 하나의 목표, 즉 예술 작품은 어떤 것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의 정점에 「황무지」가 서 있다는 입장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 생각의 흐름 속에는 괴테를 비롯해서 플로베르, 보들레르, 조이스, 토마스 만 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즘>이 지니고 있는 이중성이 여기에 있다.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낭만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상징주의까지도 모더니즘을 만드는 초석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의 흐름을 큰 시야에서 보려는 사람은 모더니즘의 시작을 중세말 프로방스 지방의 트루바두르 전통에까지 밟아 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은 위해서 기독교적인 구원마저 포기할 수 있다는 대담한 삶의 태도는 모더니즘의 핵심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된다. 모더니즘의 창시자라고 부를 수도 있는 에즈라 파운드가 트루바두르 시의 전문가였다는 사실도 우연의 일치는 아니었을 것이다.

2
엘리엇은 처음부터 <모더니스트>였다. 하버드 대학을 다닐 때 교지에 발표한 <낭만주의적>인 시들을 빼고 그가 전문 잡지에 최초로 발표한 「프로프록의 사랑 노래」는 그 작품 발표를 주선했던 파운드로부터 <최초의 현대적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그 찬사는 지금에 와서도 유효하다. 이 작품은 영국이 19세기에 개발해서 고도의 경지에 오르게 한 <극적 독백>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 독백을 듣고 있는 청자가 모호해서(여기에 등장하는 <너>를 내적 자아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내적 독백>이라고 불리우는 작품이다. 요절한 프랑스 시인 라포르그의 자조적인 내적 독백의 영향이 엿보이지만, 그 스케일이나 담고 있는 20세기 삶의 조명 같은 것을 고려한다면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는 최초의 뚜렷한 <내적 독백>의 시라고 할 수 있다.
한 중년 사내의 내적 독백을 통해 기력을 상실한 현대인의 삶이 그려진다. 그것은 종교와 공동체 의식이 제거된 삶의 실체이며 제사題詞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지옥의 삶이다. 그러나 그 삶은 18세기에 유행한 의영웅시의 어조로 노래되어서, 독백의 간절함과 의영웅시의 비꼼 사이의 긴장이 작품을 끝까지 이끌고 간다.
그리고 그 <지옥>의 삶은 또 얼마나 잘 그려져 있는가. 예를 하나 들어보자.

등을 창 유리에 비비는 노란 안개,
주둥이를 창 유리에 비비는 노란 안개,
저녁의 구석구석에 혀럴 넣고 핥다가
하수도에 고인 물웅덩이에서 머뭇대다가
굴뚝에서 떨어지는 검댕을 등으로 받고,
테라스를 빠져 나가, 별안간 한 번 살짝 뛰고는
때가 녹녹한 시월 밤임을 알고
한 번 집 둘레를 돌고, 잠이 들었다.

지금 그려지고 있는 것은 시월 저녁이다. 장소가 런던이든 보스턴이든, 우리나라의 가을 저녁과는 달리 습기 많고 안개 많은 저녁이다. 우선 그런 저녁을 안개로 대표하는 환유 수사법을 쓰고 있으며 안개는 또 고양이로 대치하는 은유 수사법을 쓰고 있다. 이처럼 두 수사법이 동시에 사용되어 효과를 얻는 경우는 그리 쉽지 않다. 물론 이런 수사법을 동원하여 효과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은 무기력한 삶이고 그 무력감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처절한 모습이다.
그러나 자신을 게에 비유하는 중간의 환상적이고 자조적인 상상(<차라리 나는 소리 없는 바다 바닥을 허둥대며 건너는……>)이 마지막에 가서는 인어들이 등장하는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상상으로 바뀌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독백을 통해 자신의 삶의 구조를 계속 추적한 끝에 얻은 자신의 실체가 결국 <어릿광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각이 그런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엘리엇은 도시의 시인이다. 「전주곡들」은 도시에 살고 있는 한없이 순하고 한없이 고통받는 인간들의 풍경이다. 이 시의 중심을 이루는 셋째 토막의 주된 배경은 프랑스 작가 샤를-루이 필립의 『몽파르나스의 뷔뷔』의 착한 매춘부 여주인공의 삶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사실이 이 시의 이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여하튼 감상에 빠지기를 언제나 거부하는 엘리엇은 마지막 토막에 가서 스토아적인 인내 혹은 자동적인 삶의 고집을 보여 주며 시를 끝낸다.
「우는 처녀」는 처음 읽었을 때 역자를 사랑 노래로 착각하게 한 시이다. 그러나 이 시는 남녀의 헤어짐을 노래하고 있고, 그것을 보는 시인(여기서 <그>와 <나>는 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이

그들이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요!
단지 제스처 하나 포즈 하나 잃었을까요.

라고 지극히 비낭만적으로 생각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물론 비낭만에도 아픔은 있어서 <때로 이런 상념들이 아직/심산한 밤이나 낮의 휴식을 숨막히게 해요>가 뒤를 잇기는 하지만.
위의 세 편은 『황무지』를 읽기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훌륭한 시들이다. 그리고 동시에 <현대시>의 출발의 모습을 그 어느 시보다도 잘 보여 주고 있는 작품들인 것이다.

3
『황무지』(1922)의 발표와 더불어 엘리엇은 좋든 나쁘든 세계의 <현대시>를 지배해 왔다. 시뿐 아니라 그의 평론은 신비평을 생기게 했고, 1960년대 중반까지 그의 이론은 대학가의 문학론을 압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비낭만적이고 지성 일변도적인 자세는 시와 비평뿐만 아니라 소설, 희곡 그리고 예술의 거의 모든 영역의 평가에까지 스며들었던 것이다.
이제 세계적으로 그의 영향이 재평가되는 추세 속에서 우리는 그의 시 작품이 앞으로 생명력을 계속 지닐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대학 생활을 할 때 너무 지나치게 <비인간적인> 그의 예술론에 의해 괴로움을 당한 일이 있는 역자는 질문을 할 때마다 부정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려는 유혹을 받다 왔다. 그 유혹은 엘리엇의 새로운 자리 매김이 진행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엘리엇이 계속 살아 있는 실체였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의 시는 그의 시론의 연습곡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낭만주의와 그처럼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낭만주의적 요소를 많이 갖고 있으며, 그가 아무리 객관적이기를 바랐지만 그의 시는 예술가적 주체의 고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은 이번에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 「전주곡들」, 「황무지」들을 새로 손볼 때마다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엘리엇이 시에서 요구하는 것은 기지와 균형과 아이러니이다. 그것은 소위 자연 발생적인 감정과 관련이 적은 것이며 세련된 정신이 문화 속에서 빚는 그 무엇이다. 따라서 전통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전통이야말로 시의 소재가 되고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은 그 다음 시인의 전통이 되는 것이다. 전통이 중요한 과제가 될 때 그 전통의 정통성이 문제된다. 엘리엇은 정통을 희랍, 라틴, 이탈리아 르네상스, 프랑스, 영국에 이어지는 서유럽 문화의 흐름에서 찾았다. 엘리엇의 비평은 그 <정통>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의 기록으로 보아야 하며, 설사 그 투쟁이 윌리엄 블레이크와 D. H. 로렌스에 대한 평가를 잘못 내리게 했다 하더라도, 존 던과 홉킨스에 정당한 빛을 주었다는 사실로 회복될 수 있는 행위인 것이다.
그가 시에 기여한 업적은 우선 과도한 감정을 배제할 때 시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감동을 주는가 하는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T. E. 흄이나 에즈라 파운드의 견고한 이미지들을 프랑스 상징파들의 유연한 이미지와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프랑스 시인 라포르그의 희화체의 틀을 통해 이룩되지만 라포르그가 가지고 있지 못한 <다성성多聲性>이 가세된다.
다음으로 그가 새롭게 시에 도입한 것은 <콜라주> 수법이었다. 그는 의식적으로 상像과 상의 연결을 위한 언어를 제거하고 그들을 그대로 병치시키는 방법을 시도했다. 그의 시 읽기의 어려움은 대부분 여기서 나오지만, 상과 상의 연결 부분에서 시인의 개인적 감정이나 약점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효과적인 수법인 것이다. 병치된 상들이 직접 독자에게 강렬한 힘을 발휘할 때 시인은 음험하게 숨어 그 힘의 모든 효과에 대하여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엇은 좀더 복잡한 인간이다. 그는 스스로 제 작품에 주를 붙임으로서 위의 효과에 제한을 가하기도 했고, 1920년대 말의 일반적인 민주주의 조류와는 달리 자기는 <문학에 있어서 고전주의자, 정치에 있어서는 왕당파, 종교에 있어서는 영국 정교 내지 가톨릭>이라고 술회함으로서 인간적인 자신에게 제한을 가하기도 했던 것이다.
극도로 새로운 기법을 사용하되 자기를 묶는 행위, 이것이야말로 서구의 지성이 이룩한 하나의 완성이며, 그것이 20세기의 심연 앞에서 행해졌을 때 20세기의 한 완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4
『황무지』에 대한 간단한 길잡이를 제시해 보자. 이 작품은 정신적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 생산이 없는 성, 그리고 재생이 거부된 죽음에 대한 시이다. 엘리엇 자신이 이 작품의 테마와 구조에 대해 원주原註에서 실마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 즉 L. 웨스튼이 지은 『제식祭式에서 기사 이야기까지』(1920)에서 제목과 구성과 많은 상징을 얻었다고 술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프레이저의 『황금가지』가운데 식물 신화와 풍요 의식을 다루는 부분에서 많은 것을 얻었음을 밝히고 있다.
웨스튼은 당시 인류학자들이 조사한 자료를 근거로 해서 이들 신화와 의식이 기독교, 특히 성배 전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추궁했다. 그네는 어부왕 이야기에서 풍요 신화의 원형을 발견했다. 어부왕의 죽음, 병 혹은 성 불능이 그의 나라에 가뭄과 황폐를 가져오고 사람고 짐승에게는 생식력 불모를 가져온다. 이 상징적인 <황무지>는 순결한 기사가 그 땅의 한복판에 있는 위험 성당에 가서 여성 남성의 풍요 상징인 성배와 창에 대해 의식적인 질문을 함으로써만이 재생을 얻을 수 있다. 이 질문을 함으로써 왕을 낫게 하고 그 땅에 풍요를 가져 오는 것이다.
이 원초적인 성배 신화와 여러 문명이 지닌 풍요제(대체로 신이 죽었다가 재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와의 관계는 식물이 겨울에 죽었다가 봄에 다시 소생하는 계절의 순환적인 진행에 대한 인간의 공통적인 반응을 보여준다. 기독교는 이 공통적인 반응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상당히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흔적을 보여준다. 원시 기독교도들이 물고기 상징으로 자신들을 나타낸 것은 어부왕과 관련이 있으며, 예수의 죽음과 부활 자체도 풍요제와 연관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죽음을 통해 재생은 「황무지」뿐 아니라 엘리엇의 여러 다른 시와 시극詩劇에서 중요한 모티프로 사용되고 있다. 「황무지」에서는 그 모티프가 동서양의 다양한 신화 내지는 종교적 자료를 사용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다채로운 즐거움도 주지만 동시에 이 작품을 어렵게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엘리엇의 시는 뒤에 숨어 있는 전거를 잘 모르더라도 섬세한 독자라면 전체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적절하면서도 충격적인 다채로운 속도의 흐름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작품을 하나의 긴 서정시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제1부 죽은 자의 매장> 황무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진정한 재생을 가져 오지 않고 공허한 추억으로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휴양지에서 지껄이는 사람들은 진정한 새로운 삶을 원치 않는다. 사월은 재생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재생을 요구하므로 또한 잔인하다. 특히 이 부분은 콜라주 수법을 사용해서 효과를 보고 있다.
갑자기 구약성경의 에스겔적인 음성으로 문명의 메마름과 희망 없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는 낭만적인 정열과 실패한 사랑의 추억이 담긴 노랫소리로 바뀐다.
다음에 고대의 종교 의식이 점치는 행위로 바뀐 황무지의 상황으로 바뀐다. 태롯 카드의 원초적인 상징들이 속화되어 나타난다(시적으로는 이 속화된 상징들이 뒤에 가서 발전되는 효과를 지니고 있지만).
그리고 현대 문명에 대한 좀더 직접적인 상이 나타난다. 보들레르의 파리, 현대 런던, 단테의 지옥 및 연옥, 이 모든 것이 하나로 가꾸기로 바꾼다. 그리고는 보들레르의 시구를 따다가 독자들도 같은 상황에 있음을, 공모자임을, 자각하도록 한다.
<제2부 체스 놀이> 권태로운 유한 부인이 화장대 앞에 앉아 있다. 실내 장식과 향수香水와 화려함이 감각을 마비시킨다. 다음에 이어지는 대화 혹은 독백(따옴표 부분은 여자의 말이고 나머지 부분은 그네의 남편 혹은 애인의 말 없는 대답이라고 보는 설이 정설로 되어 있다)과 셰익스피어를 재즈로 바꾸기까지 이르는 패로디는 문화의 타락을 암시해 주고 삶의 무의미감을 고조시켜 준다.
이들이 기다리는 무서운 <노크>는 술집 바텐더가 문닫을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카운터에 치는 노크로 바뀐다. 그리고 등장 인물은 앞서의 상류층 인물에서 하류층 인물로 바뀐다. 그들이 주고받는 생生과 성性이야말로 생식이 없는 황무지의 생과 성이다.
<제3부 불의 설교> 템스 강의 가을 장면이다. 이 장면은 문학의 유명한 작품의 부분들을 아이러니컬하게 인용하거나 왜곡함으로써, 그리고 과거의 고상한 제식 행위를 현대의 사소하고 음탕한 행위와 일치시킴으로써 괴기한 장면이 된다. 잠시 지중해에 풍요 의식을 퍼뜨린 스미르나 상인의 현대판을 보여주고 나서 현대의 성性이 지닌 무서운 무의미의 사실적인 현장에 들어간다.
템스 강에서 유혹당한 이야기가 엘리자베스 여왕 때의 사랑과 비교되며 바그너, 셰익스피어, 단테 들의 작품이 주는 메아리들과 함께 황무지의 성이 지닌 무의미와 저속함을 더 파고든다. 그리고 서양의 성 오거스틴, 동양의 부처의 정욕을 버리라는 호소로 끝맺는다.
<제4부 수사水死> 자명한 것 같은 이 짧은 마디는 두 가지 상반되는 해석을 동시에 갖고 있다. 즉 재생이 없는 수사(물을 제대로 사용 못 하는 현대적 상황)를 암시한다는 해석과, 재생에 앞선 희생적 죽음을 암시한다는 해석이 있다. 두 번째 설명을 따르는 비평가가 더 많지만, 이 마디에 나오는 죽음에는 이상한 고요함이 뒤따르고 있어 딱 결정하기 힘든 문제이다.
<제5부 천둥이 한 말> 주에서 밝힌 세 가지 테마가 나타나고 예수가 죽임당한 풍요신과 관련이 맺어지나 아직 부활은 없다. 바위만 있는 풍경이 점점 열을 더해 가자 서양 문명이 낳은 위대한 도시들이 모두 악몽으로 바뀌는 비전에까지 이른다. 그러자 곧 황무지 한가운데 있는 위험 성당으로 장면이 바뀐다. 그 성당은 비어 있고 버림받은 것 같으며 지금까지 그곳은 찾아온 고행이 헛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갑자기 닭이 울고 번개가 치며 풍요를 약속하는 비가 내린다. 천둥은 동양의 지혜의 틀을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주라, 공감하라, 자제하라.> 그러나 우리는 적절히 주기에는 너무 신중하고 적절히 공감하기에는 너무 자신들에 갇혀 있고 자제하기에는 자제를 당하도록 되어 있다. 구원은 아직 문제를 안고 있고 <적어도 내 땅만이라도 지탱해 보는> 상태를 보여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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