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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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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드 휴즈-시작법<1>
이달의 시인 테드 휴즈와 관련된 마지막 글을 올린다는 게 벌써 몇주, 아니 몇 달이 지났네요. 이달의 시인이 아닌 ‘이 분기’의 시인이 돼 버렸습니다.

테드 휴즈의 <시작법>을 구해서 두 번 읽었습니다. 그가 쓴 동화도 있었는데, 나는 이 동화들을 읽고서 그를 아주 싫어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저는 몇 년 전 실비아 플래스(테드 휴즈의 부인, 가스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함)가 테드 휴즈를 만나던 시절에 쓴 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그때는 테드 휴즈가 재능 넘치고 약간 이기적인 남편으로만 느껴졌어요. 그런데 그가 쓴 동화를 읽다가 보니까, <아내를 자살로 몰아 넣을 정도의 아집 세고 독선적인 사이코> 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화를 읽으면서 엿본 그의 사람됨이 바로 그랬다는 말이죠.

하나만 예를 들자면,
그의 동화 중에 고래에 대한 게 있는데요

원래는 고래가 하느님의 뜰 앞에 자라는 고래풀이었는데, 얘가 당최 하느님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크는 바람에 하느님이 바다에 던져버린 거래요. 하느님은 잔인하게도 ‘니가 몸을 작게 만드는 법을 알게 되면 받아주마’라고 선언하죠. 그런데 고래는 아무리 노력해도, 몸을 키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는 거에요. 고래는 원래 몸이 커서 고래잖아요.

머리 위에 뚫린 구멍으로 물을 뿜어서 몸이 작아졌다가도, 간질간질한 욕망을 참지 못해 다시 몸이 커지고, 그래서 불쌍한 아기 고래는 ‘나는 하느님의 정원에 돌아가지 못하는구나’라고 한탄해요.

대체 무슨 놈의 동화가 이래요? 여기에는
신이 어린 고래조차 결코,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는다는 독선적인 세계관,
몸 큰 놈은 온 마을로부터,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하고 배척 받는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유아적인 편 가르기의 정신, (우리랑 다른 놈은 우리 마을에 받아줄 수 없어!)
기타등등
기타등등
웬 사이코스러운 놈의 잡소리만 잔뜩 담겨있는 것 아니겠어요.

대체 이 책을 동화랍시고 번역한 편집자는 제정신이 박혀 있는지조차 모르겠어요.

그래서 한동안 테드 휴즈 따위는 근처도 하기 싫었는데요

어쨌든 그가 시를 제법 쓰는 건 사실이니까요.
(실비아 플래스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지만, 쳇)
그의 시작법 일부를 발췌합니다.

이 시작법은 그가 무슨 라디오인지 뭔지에서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했던 내용들을 출간한 것이에요. 주제별로 시를 쓰는-보다 정확히는 자기 주변의 사물과 일상들을 자기가 어떻게 느끼는 지에 대해 가만히 관찰해서, 직접 느낀 대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어요. 모두 10개 장으로 된 짧은 글들인데, 그중 두어개 장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청하에서 나오고, 한기찬씨가 옮긴 테즈 휴즈의 <시작법>입니다.

제 1장 동물과 시

짐승과 새와 물고기를 잡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동물들을 잡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점차 이러한 열정이 식어가기 시작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동물을 잡는 일과 시를 쓰는 일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내게 이 두 가지 일에 대한 관심은 동일한 것이었다고 확신하게 된다. 어릴 때 볏가리에서 짚단을 들어낼 때마다 그 밑에서 생쥐를 잡아 서른 마리나 마흔 마리가 내 코트 안감 속을 기어다닐 때까지 주머니 속에 집어놓곤 했던 쥐사냥과 현재의 내 시쓰기는 내게 마치 같은 정열의 다른 단계인 것처럼 여겨진다.

어떤 면에 있어 나는 시를 일종의 동물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시는 동물과도 같이 생명을 지닌다. 이 말은 시가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도, 심지어 그 시를 쓴 시인에게서도 완전히 독립해 있어 그 시에 다른 것을 첨가하면 상처를 입거나 나아가서는 죽어버리고 만다는 뜻이다.

또 시에는 지혜도 있다. 그것은 어떤 특별한 것…우리가 매우 알고 싶어하는 어떤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내 관심은 어떤 특정 동물을 잡거나 특정 시를 쓰는 데 있지 않고 단지 나의 외부에서 그것 나름의 생생한 생명을 갖고 있는 것을 잡는 데 있었던 것 같다.
(중략)

나는 광부나 철도직원의 아들 같은 도시아이들과 친구가 되었으며 그들과 함께 또 하나의 생활을 영위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전원에서 나 자신의 생활을 누리며 보냈다. 한두번의 불운했던 경우를 제외하면, 이 두개의 생은 서로 뒤섞이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당시에 썼던 일기장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는 사냥 이야기만 적혀 있다.

위에서 말한 대로 15세가 되자 내 생활은 더욱 복잡해졌고 동물들에 대한 나의 태도도 변했다. 나는 내가 동물들의 삶을 휘저은 데 대해 나 자신을 꾸짖었다. 나는 동물을 동물들 자신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거의 그와 같은 시기에 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 쓴 것은 동물시가 아니었다. 동물시라 불릴 만한 것은 몇 년 후의 일이었고 시쓰기가 어렸을 때의 동물 사냥의 부분적인 연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보다 더 더 나중의 일이었다. 이제 나는 그 사실을 의심치 않는다. 마음 속에 새로운 시 한편을 움트게 하는 특이한 흥분, 가볍게 도취된 채 아주 무심결에 이루게 되는 집중, 그런 다음엔 윤곽, 부피와 색채와 깨끗이 마무리된 형태, 평범한 무생명체의 한가운데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실체, 이 모두는 너무도 친숙해서 오인할 여지도 없는 것들이다. 이것이 사냥이며, 시는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 여러분 자신의 생명 외부에 있는 생명을 지닌 새로운 종인 것이다.

지금 나는 시쓰기에 있어 내 관심의 근원과 성숙이라고 믿는 바를 간략히 말했다. 당신은 몇 가지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어떻게 비 속의 산책에 대해 쓴 시가 동물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일까? 글쎄 아마 그건 기린이나 낙지, 그밖에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어떤 동물과도 비슷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그것을 하나의 정신이 움직이게 만드는, 살아 있는 부분들의 총합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 살아있는 부분들이란 낱말이며, 이미지며 리듬이다. 정신은 그 부분들 모두가 함께 움직일 때 그 속에 거주하는 생명인 것이다. 부분과 총체인 정신 중에서 어떤 것이 먼저 오는지를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부분들이 모두 죽었다면..당신이 그 작품을 읽을 때 낱말이나 이미지나 리듬들이 뛰어올라 살지 못한다면..그 생명체는 상한 것이고 그 정신은 병든 것이다. 그래서 시인으로서 당신은, 당신이 관할하는 모든 부분들, 낱말과 리듬과 이미지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난점이 시작된다. 우선 최초의 규칙들은 상당히 단순하다. 살아있는 낱말들이란,째깍이나 낄낄처럼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 주근깨나 엽맥처럼 볼 수 있는 것, 식초나 설탕처럼 맛볼수 있는 것, 가시나 기름처럼 만질 수 있는 것, 타아르나 양파처럼 냄새맡을 수 있는 것 따위다.

즉 직접적으로 우리의 오감 중 어느 하나의 감각에 속할 수 있는 낱말들인 것이다. 아니면 <탁 때리다>나 <균형르 잡는다>처럼 움직이고 근육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낱말들이 살아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 <째깍>은 소리만을 줄 뿐만이 아니라 혀로 <째깍>이라고 발음할 때와 같은…날카로운 동작에 대한 개념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 낱말은 또 딱 소리를 내는 나뭇가지처럼 가볍고도 부서지기 쉬운 물체에 대한 느낌도 준다. 무거운것도, 부드럽고 구부러지기 쉬운 것도 째깍 소리를 내지 않는다.

같은 식으로 타아르는 코를 찌르는 냄새만 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두텁고 빽빽하며 끈끈해서 만지기에 끈적끈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 그것은 부드러울 때에는 검은 뱀처럼 움직이며 아름답고도 검은 광택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 낱말은 다른 많은 낱말들과 연관된다. 마치 각각이 눈과 귀와 혀를, 혹은 귀와 손가락과 움직일 수 있는 몸체를 갖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여러 개의 감각에 속하는 것이다. 낱말이 생명적이며 시적인 것은 바로 그 속에 있는 이 작은 마귀 때문이며 시인은 바로 이 작은 마귀를 다뤄야 한다.

(중략)
좋지 않은 시에서는 바로 이러한 일이, 말들이 서로를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다행히도 한 가지만 해낼 수 있다면 그런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그 한가지란 당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마음 속으로 그려보라는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며 그것과 더불어 살아보라. 마치 마음으로 산수셈이라도 하듯 힘들여 생각하지는 말고, 그것을 바라보고 만지고 냄새를 맡고 귀기울여 보고, 그 속으로 침잠하라. 이 일을 해내면 말은 마술처럼 스스로를 보살피게 된다. 이때 당신은 쉼표라든가 종지부, 또는 그런 류의 것 때문에 고심할 필요는 없다. 낱말을 들여다 볼 필요도 없다. 오직 당신의 눈, 귀, 코, 미각, 촉각, 전존재를 당신이 침잠하고 있는 사물을 향해 계속 나아가게 하라.

(중략)또 그 낱말이 아무리 낡았다 하더라도 당신이 그 낱말을 쓰는 그 순간 올바르게 여겨졌다면 스스로 놀라게 될 것이다. 자기가 써놓은 것을 죽 다시 읽고 나서 충격을 받을 것이다. 당신은 하나의 영혼, 하나의 생물을 잡았을 것이므로.    

이제 몇 가지 실례를 제시하겠다. 내가 산채로 잡지 못했던 짐승 중에 여우가 있다. 두번을 실패했는데, 한번은 내가 잡은 여우새끼를 가지러 가기 전에 농부가 그것을 죽여버려서, 그리고 또 한번은…(중략)

몇 년뒤 나는 런던의 쓸쓸한 하숙방에서 눈오는 밤 늦게까지 앉아 있었다. 일년 동안이나 아무것도 쓰지 못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어떤 것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불과 몇 분만에 다음의 시를 썼다. 이는 내가 처음으로 쓴 동물시이다.


나는 상상한다, 이 한밤의 순간의 숲을.
무엇인가가 살아있다
시계의 고독 곁에서
그리고 내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는 이 텅 빈 백지 곁에서.

창 밖에는 어떠한 별도 보이지 ㅇ낳는다
한결 가까운 무엇인가가
어둠 속 더욱 깊은 곳에서
고독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차갑게, 어둠 속의 눈발처럼 섬세하게,
여우의 코가 스친다, 가지를, 잎새를,
두 눈이 하나의 동작을 돕는다, 지금
지금, 지금, 지금

나무사이 눈 속에 깨끗한 자국을 찍으며.
그리고 조심스레 개간지를 대담하게 가로질러 온
절름거리는 그림자가
그루터기 곁에 움푹 들어간 곳에서

꾸물거린다. 하나의 눈
넓어지며 깊어지는 녹색,
번쩍거리며, 집중하여,
자신의 과업을 완수하며

그때, 갑작스레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고
여우는 머리의 어두운 구멍 속으로 들어온다.
창에는 여전히 별이 없다, 시계가 째깍거린다,
백지는 채워졌다.

-생각속의 여우


이 작품은 의미라고 쉽사리 불릴 만한 것이 없다. 이 시는 확실하게 여우에 대한 시지만, 그 여우는 여우인 동시에 여우가 아니다. 대체 어떤 여우가 개들이 짖어도 미소지으며 내 머리 속으로 걸어들어올 수 있을까…추측컨대 아직도 그 여우는 내 머리속에 앉아 있으리라. 그것은 여우이기도 하고 영혼이기도 하다. 그것이 진정한 여우인 것이다.

내가 이 작품을 읽을 때 난 여우가 움직이는 모습을 본다. 여우가 발자국을 찍고 있는 것을 본다. 그림자가 눈의 고르지 못한 표면 위로 지나가는 것을 본다. 낱말들이 이 모든 것을 보여주며 여우에게로 가깝게 나를 데려간다. 그 여우는 매우 사실적으로 여겨진다. 언어는 여우에게 육신과 그것이 걸어다닐만한 장소를 부여한 것이다.

(중략)내가 언어 속에서 진정한 여우를 사로잡지 못했다면 나는 이 작품을 남겨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략)실제로는 그 시를 읽을 때마다 여우는 어둠 속에서 다시 나와 내 머리 속으로 걸어들어 오곤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죽고난 뒤 오랜 뒤에도 그 시의 사본이 존재하는 한 누군가 그 작품을 읽을 때마다 여우가 어둠의 어느 곳으로부터에선가 일어나 그에게로 걸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의 여우는 몇 가지 면에서 평범한 여우보다 좋다. 영원히 살아갈 것이며 굶주림이나 사냥개 때문에 고통받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여우를 내가 가는 곳 어디든지 데리고 다닌다. 나는 여우를 만든 것이다. 아주 선명하게 상상함으로써 그리고 살아 있는 언어를 찾아냄으로서.

(중략) 나는 어린 시절 아주 작은 호수, 실제로는 커다란 연못에서 주로 낚시를 했다. 이 연못은 한군데 아주 깊은 데가 있었다. 때때로 무더운 날에는 수면 가까이 철로 침목처럼 생긴 것이 떠 있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거대한 창꼬치였다.

(중략) 최근에 나는 창꼬치 낚시를 하고 싶었지만 갈 형편이 아니었는데, 며칠이 지나 그 낚시의 형언키 어려운 즐거움을 상기하고 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중략) 나는 바로 창꼬치를 사로잡은 것이 아니고 내가 낚아 본 일조차 없는 그 괴물이 살고 잇는 연못 전부를 사로잡았다.

여기 내가 창꼬치라고 제목을 붙인 시가 있다.

삼 인치의 가시, 모든 부위가
완전한 가시, 금빛이 얼룩진 녹색.
나면서부터 살인자, 짖궂은 늙은 미소.
파리 떼 사이로 수면 위에서 춤춘다.

혹은 움직인다, 자신의 위엄으로 겁주며,
에메랄드빛 연못 바닥 위, 잠수함의
우아하고도 소름끼치는 그림자 던지며.
백 피이트의 그 세계 속을.

연못 속, 더위 먹은 수련 잎사귀 아래-
움직이지 않는 어둑한 그림자.
지난 해의 검은 잎새 위에 누워 하늘을 본다.
혹은 잡초 사이 호박색 구멍 속에 떠 있다.

턱에는 갈고리 모양의 집게와 엄니
지금도 변치 않았던 것이다.
도구에 지배된 삶.
아가미는 조용히 반죽한다, 그리고 가슴 지느러미도.

먹이로 유리병 속에
삼인치, 사인치, 사인치 반짜리
유어들을 넣어 수초 속에 묻어놓자마자-
삽시간에 두 마리가 나타났다. 마지막 한 놈은

늘어진 복부와 타고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정말 그놈들은 아무에게도 용서를 베풀지 않는다.
2피이트가 넘는, 각각 6파운드 짜리 두마리,
분홍바늘꽃 사이에서 의기양양하며 인정머리 없고 죽은 듯한-

한 놈이 아가미로 다른 놈의 목덜미를 밀어붙인다.
튀어나온 눈알이 응시한다, 죔자물쇠처럼-
눈알 속에도 예의 그 쇠붙이가 있지만
그 막은 죽음 앞에서 오무라든다.

내가 낚시질한 연못은 지름이 50야드, 그 속의
수련과 활기찬 잉어들은 그것을 길러준
수도원의 눈에 보이는 어떤 묘비보다도
오래 살아남았던 것이다-

전설의 깊이에 멈춰서서.
그것은 영국 만큼이나 깊다. 그것은
움직이기엔 너무나 거대하고, 또 너무 거대하고 늙어서
땅거미 지면 감히 낚시줄 던질 수 없는 창꼬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나는 조용히 낚시를 던졌다
무엇이 움직일지 어떤 눈이 바라볼지
두려워 머리가 오싹해져서.
정적이 어두운 연못 위에서 튄다,

밤의 어둠 아래의 어둠이 풀어놓은
꿈보다도 내 귓전에 부서지기 쉬운
부초를 침묵케 하는 부엉이들,
그런데 그것은 천천히 치솟아 내게로 다가왔다, 응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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